1. 당의 '안동도호부'
(1) 점령지 정책 실패
(2) 저항운동 때문에 안동도호부는 유명무실
(3) 당 : 당 관내에 속하는 영주(營州)에 고구려 유민과 거란족, 말갈족 등 북방민족을 옮겨와 살게 했다
2. 걸걸중상, 걸사비우, 대조영(大祚榮) : 이곳에 거주
(1) ‘고구려의 별종’
(2) 현지 도독의 부당한 압제에 맞서 저항
(3) 지도자인 걸걸중상과 대조영 등은 영주를 빠져 나와 영토 확장
① 걸걸중상, 걸사비우 등 : 전사
② 대조영 : 말갈군 + 고구려 부흥군 → 건국
(4) 대조영 (698년)
① 도읍지 : 동모산(지린성 둔화시 성자자산)
② 국호 : 진국(震國·동방 나라의 뜻)
※ 유득공 <발해고>(渤海考) : "그 대씨(大氏)는 누구였던가? 그는 고구려 사람이었다. 그들이 차지했던 땅은 우리의 고구려였다"
3. 대조영
(1) 독자적 연호 사용 : 신라 등 주변 국가에 선포
(2) 당 : 관례대로 대조영을 발해군왕(渤海郡王)으로 책봉
(3) 건국 21년만에 사망 : 시호는 고왕(高王, 고구려 왕)
(4) 2대 무왕
① 독자 연호 사용
② 당에 대해 독립국임을 강조
4. 3대 문왕 : '해동성국' 기초 마련
(1) 일본에 국서를 보내면서 자신을 '고려국왕'이라고 칭하였다
(2) 일본 : 발해에서 전해진 음악을 '고려악'
5. 정복 전쟁 : 고구려 영토 2/3 확보
(1) 남 : 압록강 상류 언저리까지(뒤에 대동강 상류까지) 내려와서 당의 지경과 맞댔다
(2) 서 : 요동의 일부 지역을 차지하여 당·거란·돌궐과 경계를
(3) 동 : 연해주와 함경도 아래 지역까지 내려와서 신라와 맞닿았다
(4) 북 : 송화강 상류에서 흑수부와 경계
6. 고구려 후신임을 자처한 발해에 대한 중국과 일본
(1) 중국
① 발해, 발해 말갈, 말갈
② 말갈 : 중국 동북방의 이민족을 통칭하는 낮춤말
③ 대조영 : 고구려 유민으로 고구려 부흥을 목적으로 발해 건국 (일부 기록에 속말말갈 출신)
(2) 일본
① 발해 상층부 : 고구려 유민
② 발해 하층부 : 말갈 사람
7. 말갈족 : 고구려 주민이자 유민
(1) 끊임없이 이동하여 서쪽으로 진출
(2) 중심세력 :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이 있던 고구려에 복속
(3) 고구려가 외부의 침입을 받을 때 고구려에 속해 힘을 합해 싸웠다
(4) 영주 등지에서 고구려 유민과 함께 거주
(5) 걸사비우와 대조영이 거사할 때 공동운명체로 함께 참여
(6) 동쪽으로 진출할 때에도 합류
(7) 걸사비우가 죽고 나서도 별도의 행동을 보이지 않고 새 나라 건설에 참여
8. 고구려 유민 : 발해의 지배세력
(1) 대씨는 발해 왕족, 고씨는 고구려 왕족의 성, 나머지 밝혀진 성씨들도 거의 고구려 귀족 : 발해왕조는 고구려 유민 또는 귀족
(2) 말갈 출신 역시 지배층에 합류 : 새로운 성을 주어 지배층에 동화시켰을 것
① 고구려 유민과 고구려에 동화한 말갈이 이룬 왕조로 200년 넘게 유지
② 정복전쟁을 거쳐 여러 민족을 지배하면서 유지
(3) 756년, 천도 : 동모산 →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
① 재정부담이 큰 천도를 단행했던 것은 그만한 힘이 뒷받침되었기 때문
② 상경용천부 : 당시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큰 도성
- 목단강 유역, 즉 지금의 흑룡강성 영안현 동경성
- 도성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한 가운데에
(4) 중앙직제 : 3성 6부 체제
① 최고 책임자 : 대내상(大內相)
② 6부 : 충부, 인부, 의부, 지부, 예부, 신부로 각기 분담해 행정 담당
③ 당 제도를 그대로 본받지 않고 발해의 실정에 맡게 행정 체계 구축
(5) 지방 행정제도
① 중앙과 동서남북에 5경(京)을 두었으며 그 아래 15부(府)
② 부여 옛 땅에 부여부를 두어 거란에 대비한 군사를 주둔
③ 고구려도 확보하지 못한 연해주 땅에는 솔빈부를 두고 말을 사육
※ 228년을 유지한 뒤 거란족이 세운 요(遼)에 926년 멸망
※ 고려 : 발해를 계승했다고 표방, 그 정통성을 고려가 이었던 것
※ 석차쟁장사건(席次爭長事件)
① 897년, 발해 : 발해의 국력이 신라에 앞서니 외교사절이 앉는 차례를 바꾸어달라고 요구
② 그동안 신라 사절이 앞자리에 앉았던 것
③ 당은 거절, 신라는 분노 : 발해 국력이 신장되자 신라의 라이벌 의식이 더욱 세어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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