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임시정부
(1) 3·1운동의 열기에 힘입어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에서 출범
(2) 몇 개의 망명정부를 통합하는 성격
(3) 만주, 미주, 연해주, 중국 관내, 그리고 국내 인사들이 합류
(4) 복벽(復벽) 노선, 외교 노선, 무장투쟁 노선, 실력양성 노선 등 여러 노선을 추구한 세력도 합류 : 통합적 조직
(5) 정체는 '공화주의' : 군주제를 폐지하고 주권재민의 국민국가를 지향
(6) 국명 : 대한제국을 승계하되 정체에 따라 제국(帝國)이 아닌 ‘민국’
(7) 연통제(聯通制)라는 이름의 국내 지방조직 구축 노력
(8) 외국의 승인을 받기 위해 대표를 여러 곳에 파견했으며 쑨원의 광둥정부로부터는 정식 승인 받음
(9) 산하 군사조직으로는 만주를 기지로 한 서로군정서와 북로군정서를 산하단체 형성
(10) 독립신문 발행
(11) 독립의지 천명
(12) 독립공채(獨立公債) 발행
(13) 국내외에서 국민모금
2. 주도권 갈등
(1) 이질적 이념집단이 참여
(2) 각기 다른 노선을 가진 인사들이 결합
(3) 무장투쟁 노선과 외교 노선 갈등
(4) 고질적인 기호 서북 등 지방색과 양반, 상놈 등 신분 갈등
3. 1923년, 창조파와 개조파로 분열 → 결별
(1) 창조파
① 임시정부 완전 해체
② 새로운 정당단체 형성
(2) 개조파
① 잘못 시정
② 임시정부 유지
(3) 중간세력
① 대통령제 → 국무령제
② 임시정부 고수
4. 고수파
(1) 이동녕, 이시영, 김구, 조완구, 엄항섭, 차이석 등
(2) 산하의 하부조직도 없이 고군분투하면서 임시정부를 지켰다
(3) 임시정부 : 하나의 독립단체 수준으로 전락
(4) 프랑스 조계 마당로에 청사를 마련,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유지하려
(5) 상하이 교민 2,000여명은 단비 제공
5. 윤봉길
(1) 김구가 조직한 한인애국단 단원
(2) 상하이에 진주한 일본군 : 훙커우공원에서 천장절 행사
(3) 단상에 폭탄 투척
① 중국 주둔 일본군 총사령관 시라카와(白川義則) 등 7명의 요인 사살
② 1932년 4월29일에 일어난 사건 : "중국 백만 대군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냈다"
6. 김구를 비롯한 임정요인
(1) 항저우(杭州) → 자싱(嘉興) → 난징 → 창사(長沙) → 광저우(廣州) → 류저우(柳州) → 치장(기江) → 충칭(重慶)
(2) 통일전선 모색
① 국민당 정부에서 자금을 지원 받기도
② 청년을 중국 군관학교에 보내 장교로 양성
③ 한국광복군 조직 : 임시정부 이름으로 일본에 선전포고
7. 친일파 청산 의지 표명
(1) 1941년 작성한 임시정부 건국 강령 : "적에게 부화한 자와 독립운동을 방해한 자는 선거권, 피선거권을 박탈한다”
(2) 한국독립당 행동강령 : "매국노와 독립운동을 방해한 자를 징치하며 그 재산을 몰수해 국영사업에 충용하고 그 토지는 국유화한다"
(3) 광복 뒤 개인자격으로 귀국한 김구와 임정 요인 : 친일파를 재등장시키고 단독정부 수립을 추진하는 이승만과 맞서며 통일정권 수립을 위해 좌우합작을 끊임없이 모색
8. 대한민국 헌법 전문 :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는 구절을 넣어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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