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궁 대빈궁 내부, 숙종의 후궁 희빈 장씨의 신궁
1. 후궁은 누구인가?
(1) 후궁 : 중국 천자가 거처하는 궁중의 전전(前殿) 뒤에 있는 깊숙한 부분이라는 뜻
(2) 내궁(內宮) = 내정(內庭) = 후정(後庭)
(3) 명목상 황제의 적처인 황후 외의 여러 부인들을 지칭
(4) 황제 잠자리를 시중들기 위해 존재
(5) 고려
① 왕의 정처 : 왕후
② 왕의 첩 : 부인
- 품계 : 정 1 품
- 원주, 궁주, 옹주 등의 칭호
- 귀비, 숙비, 덕비, 현비 등의 칭호로 구분
③ 옹주
- 후궁
- 왕의 딸이나 며느리
(6) 조선 : 왕의 첩을 모두 후궁
칠궁 연호궁 입구, 영조의 후궁 정빈 이씨의 신궁
2. 후궁이 되는 법
(1) 간택 후궁
① 왕비나 세자빈처럼 전국에 금혼령을 내리고 처녀들을 간택하여 빙례를 갖추어 후궁으로 들이는 경우
② 양반 명문가 출신
③ 입궁 때부터 종2품 숙의 이상의 품계에 봉작
(2) 승은 후궁
① 궁녀로 입궁했다가 왕의 승은을 입어 봉작을 받아 후궁이 된 경우
② 한미한 집안의 궁녀 출신
③ 한두 번 왕의 승은을 입었다고 해서 모두가 후궁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④ 상궁에 머물거나 더 낮은 품계에 머문 궁녀도 있었다
(3) 권력자들의 진헌, 왕실 여성들의 추천 등 특별전형을 통해
(4) 왕이 직접 선택
(5) 세자나 왕자의 첩으로 있다가 남편이 왕이 되면서 후궁으로 책봉
3. 왕비는 양반 출신, 후궁은 양반, 중인, 노비, 과부까지 신분이 다양
(1) 태종 : 과부 2명을 후궁으로(아직 고려 요소가 잔존)
(2) 철종 : 후궁 12명이 모두 궁녀 출신
고종의 후궁 엄황귀비
4. 후궁 품계
(1) 조선시대 후궁은 일종의 관직 체계에 포함 : '내직', '내관', '여관'(女官) → <경국대전> 편찬 이후에는 '내명부'
(2) 정 1 품 ~ 종 4 품의 품계가 부여되는 공인
(3) 품계에 따른 지위, 명예, 재산
(4) 지위 : 왕의 총애와 왕실에 대한 공헌, 즉 자식을 많이 낳는 것에 따라 달라짐
① 선조 대의 인빈 김씨, 광해군 대의 상궁 김개시, 숙종 대의 희빈 장씨, 숙빈 최씨같이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
② 왕세자의 첩 : 종 2 품 양제부터 종 3 품 양원, 종 4 품 승휘, 종 5 품 소훈 등 4단계로
5. 후궁 임무
(1) 일정한 직무
(2) 경국대전 : 후궁들의 입궁, 승진, 업무 등에 관해서는 아무런 규정이 없다
① 정원이 몇 명인지, 어떻게 선발한다는 원칙도 없고, 품계만 나뉘어 있을 뿐
② 왕의 마음이 많이 작용했다는 의미
(3) 왕비를 보좌하는 직무
① 1품 빈과 귀인
- 왕비 보좌
- 부례(婦禮) 논의
② 2품 소의와 숙의 : 비례(備禮) 찬도
③ 3품 소용과 숙용 : 제사와 빈객에 관한 일
④ 4품 소원과 숙원
- 잠자리
- 사시(絲枲) : 모시를 다스려 해마다 공을 바쳤다
⑤ 왕의 잠자리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궁중의 제반 사무를 분장하기 위하여 설치
⑥ 매우 현실적이고 제도적인 임무 부과
후궁 품계가 기록된 <경국대전>
6. 후궁 수
(1) 충분한 자료가 없어 조선왕조 500년 동안 후궁의 수를 정확한 파악은 불가능
(2) 태종
① 1빈(嬪) 2잉((媵)제(3명의 아내) 마련
② 그러나 후궁을 여럿 두어도 무방
(3) 조선 초기 : 약 7~8명
(4) 조선 후기 : 평균 3명
(5) 왕비의 약 3배
① 5명은 나중에 왕비
② 조선 초기에 많았고 성리학이 심화되면서 후기로 갈수록 줄어들었다
(6) 전기 : 간택후궁 수 ≒ 승은후궁 수 → 간택 후궁 수 < 승은 후궁 수
① 약 166명 중에 59명이 간택 후궁
② 광해군 이후에는 현격하게 간택 후궁 감소
③ 승은 후궁이 낳은 왕의 자녀 수 > 왕비나 간택후궁이 낳은 왕의 자녀 수
7. 왕을 낳은 후궁 = 칠궁
(1) 자신이 낳은 아들이 세자가 되면 정1품 빈에 책봉, 궁호를 하사받았다
(2) 빈으로 책봉된 후궁 가운데 칠궁 : 왕의 어머니가 된 후궁
(3) 능
① 왕비는 죽으면 왕의 곁에
② 왕과 함께 신위를 종묘에
(4) 원
① 후궁은 따로 사당을 설치
② 왕과 함께 묻힐 수 없다
영조의 후궁 영빈 이씨의 인장
8. 왕후로 승격된 후궁
(1) 조선시대 즉위한 27명의 임금이 맞이한 왕비는 모두 37명
① 성종, 중종, 숙종 : 3명
② 태조, 예종, 선조, 인조, 경종, 영조, 헌종 : 2명
③ 나머지 : 1명
(2) 후궁 중에서 왕비의 지위를 얻은 여성은 6명
① 단종 어머니 현덕왕후 권씨 : 양반 출신의 간택 후궁
② 예종의 둘째 부인인 안순왕후 한씨 : 양바 출신의 간택 후궁
③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 : 양반 출신의 간택 후궁
④ 중종의 어머니 정현왕후 윤씨 : 양반 출신의 간택 후궁
⑤ 중종의 두 번째 왕후인 장경왕후 윤씨 : 양반 출신의 간택 후궁
⑥ 승은후궁으로 왕비에 오른 경우는 유일하게 희빈 장씨 : 숙종이 "후궁으로는 왕비를 삼지 말라"고 명함에 따라 후궁으로 왕비가 된 여성은 없다
9. 후궁이 되었다가 지위를 박탈당한 후궁
(1) 세조의 후궁 소용 박씨 덕중
① 수양대군 시절 애첩 → 세조 즉위 이후 소용의 작첩을 받았다
② 아들이 죽은 후 환관 송중을 사랑하여 처벌
③ 종친인 구성군 준을 연모하여 편지를 보낸 일이 문제가 되어 교형
(2) 정종의 시비 기매
① 영안대군 시절에 아들 출산
② 환관 정사징과 간통 : 궐 밖으로 축출
(3) 성종의 후궁 귀인 정씨와 귀인 엄씨
① 연산군의 생모 윤씨를 참소하여 죽게 했다 하여 연산군이 정씨의 아들 안양군 이항과 봉안군 이봉으로 하여금 때려죽이게
② 연산군은 내수사를 시켜 그들의 시신을 찢어 젓을 담가 산과 들에 흩어버리게
(4) 영조의 후궁 숙의 문씨
① 사도세자를 모략하여 죽게 하는 데 일조했다 하여 정조가 작위 박탈
② 궁에서 폐출 → 사사(賜死)
파주 소령원, 숙종의 후궁 숙빈 최씨의 묘소
10. 별궁 : 선왕의 후궁들이 모여 살던 곳
(1) 자신이 모시던 왕이 죽으면 궁궐을 나와 별궁에 모여 거처
(2) 의빈궁 : 태종 후궁들이 모여 살던 곳 → 세조 : 의빈궁을 영수궁이라 개명
(3) 자수궁 : 세종 후궁들이 모여 살던 곳
① 세조 이후 후궁들이 거처
② 연산군의 생모 윤씨는 폐비되어 잠시 거처
(4) 수성궁 : 문종 후궁들이 모여 살던 곳
(5) 창수궁 : 성종이 세조의 후궁 근빈 박씨가 거처하는 곳을 특별히 구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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