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개 =
성은 주씨, 전라도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에서 출생
주달문 : 아버지, 훈장
어머니는 밀양박씨
주달무 : 시동생, 논개가 5세 되던 해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께서 딸과 자신의 생계를 그에게 의탁하나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논개를 마을부자이던 김풍헌의 집에 민며느리로 팔아 먹고 도주
최경회 : 논개 어머니는 친정으로 도주...김풍헌은 논개 모녀를 관아에 고발하였고 이들의 재판을 맡음 - 무죄방면 - 관아에서 잔심부름하며 살게 함 - 장성한 논개를 첩으로 들임 - 임진왜란때 전라도 지역에서 의병장으로 활동
논개는 진주성 함락후 관기로 위장한 뒤 의로운 행동과 죽음을 맞이했는데 기생으로 오인되어 임진왜란중 충신,효자,열녀를 뽑아 편찬한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도 이름을 올리지도 못했고 진주사람의 입과 입을 통해 알려져오면서 매년 추모제가 열려왔다. 그 후 경종1년 (1721) 공식적으로 비변사에서 그녀의 순국사실을 국가가 인정하고 영조16년(1740)년 사당이 의암 부근에 세워지고 지금까지 매년 논개의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 우에쓰카 하쿠유 : 논개를 일본에서 섹스와 다산의 신으로 만든 장본인 =
게야무라 로쿠스케 : 논개가 끌어안고 죽은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의 부장. 게야무라는 통칭이고 진짜 이름은 기다 마고베이, 별명은 '신의 칼', 전설적인 사무라이
우에쓰카 하쿠유 : 건축설계사...후쿠오카현 다가와시 근처 히꼬산 자기 소유의 밭을 갈다가 오래된 묘비를 발견하는데 그 비석에는 게야무라 로쿠스케의 이야기가 있었다. 내용은 그의 죽음이 명성에 걸맞지 않게 진주성싸움의 승리를 기념하는 자리에서 술을마시다 '논개'라는 조선여인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것.
그는 1973년, 진주를 방문 "나는 논개를 존경하는 일본인"이라 하면서 한-일간 역사적 화해와 교류, 영혼들의 원풀이라고 주장하면서 (1) 진주 남강에서 논개와 게야무라의 넋을 건져 (2) 이를 일본으로 모셔가는 의식을 치룬 후 (3) 남강에 국화를 뿌리고 1천마리의 종이학을 띄웠고 (4) 히코산에 게야무라와 함께 논개 무덤을 만듬.
진주의 나무, 흙, 모래 그리고 돌로 게야무라 사당옆에 논개 무덤을 꾸몄고 논개의 영정과 똑같은 영정을 만들어 일본으로 가져갔는데 당시 진주 공무원들은 만족해하고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 '감사장'까지 줬다. 게야무라와 나란히 걸린 논개의 영정, 그 뒤 그는 논개를 게야무라와 영혼결혼식을 시키고 그의 부인과 처제 영정옆에 첩으로 세워놓았다. 이에따라 일본에서는 (1) 전쟁중에 게야무라와 논개가 만나 (2) 전쟁이 끝난후 논개는 그를따라 일본에 와서 (3) 함께 해로하다 죽었다는 이야기까지 만들어졌고 (4) 일본에선 논개를 '부부금실을 좋게 해주는', '섹스와 다산의 신' 으로 모시게 되었다.
뒤늦게 시민단체에서 알아내어 이것을 이슈화하였고 정부와 시 당국에서 영정과 우에쓰카씨가 진주에서 가져간 것을 모두 회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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