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돈

 ⑴ 이제현이 공민왕 초기의 개혁을 주도했다면 후기의 개혁을 주도한 사람

 ⑵ 개혁주의자 보다는 왕위를 찬탈한 반역자나 국정을 문란하게 한 간신으로 인식

  ① 우왕, 창왕을 신돈의 후손으로 인식시켜 조선 왕조 성립을 합리화하려는 시도때문

  ② 조선 개국 세력의 역사 왜곡 작업 때문

 ⑶ 법명 : 편조

 ⑷ 법호 : 청한거사


2. 공민왕

 ⑴ 왕사 보우를 통해 불교에 심취

  ① 유학자 중심의 관료체제의 강한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

  ② 고려의 역대 왕이 흔히 사용하던 정치적 방편

 ⑵ 1358년, 측근 김원명이 신돈을 소개

  ① 공민왕 : 그를 통해 개혁정책을 강력히 추진하려고 생각

  ② 주위의 시기

   ⓐ “앞으로 나라를 어지럽힐 자는 반드시 중님이 될 것이다”

   ⓑ 정세운 같은 무장 : 신돈은 요승(妖僧)

  ③ 1364년, 입궐 : 공민왕의 개혁정치 주도

  ④ 1365년, 정계의 핵심 세력으로 부상

   ⓐ 파당에 속해 있지 않다는 점과 사리사욕이 없다는 점에서 신돈을 높이 평가

   ⓑ 7월, ‘진평후’라는 봉작 받음

   ⓒ ‘영도첨의사사사 판중방감찰사사 취산부원군 제조승록사사 겸판서운관사’ 취임

   ⓓ 신돈 : 인사권 및 내외의 모든 권력을 장악

   ⓔ 승복을 벗고 ‘돈’이라는 속명 사용 : 강력한 개혁 작업 추진


3. 신돈의 개혁 정책

 ⑴ 노비와 토지 개혁 : 가장 중점을 두고 실시

  ① 권문세족의 경제적 힘을 약화시키기 위한 정책

  ② 민간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책

  ③ 왕권을 강화시키는 방법

 ⑵ ‘전민변정도감’ 설치

  ① 부당하게 겸병당한 토지를 원주인에게 반환

  ② 강압에 의해 노비로 전락한 사람을 양민으로 신분 복귀

  ③ 광종의 ‘노비안검법’ 실시와 맞먹는 급진적인 조치

  ④ 노비에서 풀려난 사람 : “성인이 나타났다”

  ⑤ 노비와 토지를 잃은 양반 : “중놈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

 ⑶ 1367년, 성균관 축조 : 유학 발전을 적극 추진

 ⑷ 1367년, ‘도선비기’를 근거로 평양으로 천도할 것을 건의, 실패

 ⑸ 반발

  ① 1367년 10월, 오인택(吳仁澤), 경천흥(慶千興), 김원명 등이 신돈을 제거하려다 발각,유배

  ② 1368년 10월, 김정, 김흥조, 김제안 등이 신돈을 살해하려다가 발각, 유배, 살해


4. 신돈의 타락

 ⑴ 환속후 기현의 집에 있다가 1367년, 사택을 얻어 독립한 때부터 타락

 ⑵ 많은 첩과 아이

 ⑶ 주색

 ⑷ 비판의 빌미 제공


5. 1370년 10월, 공민왕 : 친정(親政) 시도

 ⑴ 1369년 5도의 도사심관이 되려고 사심관 제도 부활 시도

  ① 공민왕 반대, 좌절

  ② 공민왕과 멀어짐

 ⑵ 지나치게 성장한 신돈 세력 : 공민왕 친정에 걸림돌

  ① 1371년, 역모죄로 수원에 유배, 살해

  ② 개혁을 추진하던 기현, 이춘부, 이운목 등도 함께 제거


6. 신돈의 개혁 평가

 ⑴ 많은 양민이 노비에서 환원

 ⑵ 권세가들이 부당하게 빼앗은 토지의 상당 부분이 원주인에게 되돌려지거나 국가에 환속되어 경제적 안정을 꾀할 수 있는 기반 마련

 ⑶ 성균관 축조

  ① 유학자 대거 배출

  ② 조선 개국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신진사대부층의 성장 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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