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시대부터 환관들이 있었는데 ‘궁중 잡역자’들이었다. 고려 말기부터 국왕 측근에서 시종하는 문관인 내시(內侍)에 속하는 이들이 생겨 그때부터 환관과 내시가 동일시
1. 의종(1127~1173 재위)
⑴ 개경의 문신 귀족이 정권 장악
① 귀족 세력의 지나친 규제에 환멸
② 정사(政事)를 등한시
ⓐ 방만(放漫)한 생활
ⓑ 문신의 지나친 행동 규제에 반발한 고의적인 처사
⑵ 왕권 회복을 위해 친위 세력 형성에 주력
① 환관(宦官), 내시(內侍) 득세
② 환관, 내시 처벌을 요구하게 되는 사건
ⓐ 1147년, 이숙, 유혁, 승황 등이 금나라와 내통하여 서경에서 반란 시도 : 발각, 실패
ⓑ 1148년 10월, 이심, 지지용 등이 송나라 사람 장철과 공모하여 고려를 명망시키려는 반란을 계획하다가 송나라 도강 임대유의 고발로 체포, 사형
③ 1148년 3월 내시 김거공, 환관 지숙 등 7명 유배
④ 정서(鄭敍)의 역모사건 해결로 환관 정함에게 합문지후 벼슬을 내림
⑤ 계속되는 문신과의 알력에서 격구(擊毬), 수박희(手搏戱, 태껸), 주연(酒宴)으로 생활
2. 의종 후반기 정치 : 환관 정치
⑴ 의종의 사치가 심해지고 주연의 횟수가 늘어날 수록 권력은 환관과 내시들이 차지
① 환관 정함, 백성연, 왕광취 등과 내시 박회준, 유장 등은 100칸이 넘는 대저택 소유
② 많은 노비를 부리며 기고만장한 태도로 일관
③ 정함, 백선연 : 왕의 신임을 믿고 백관들을 눈짓으로 명령하고 무장(武將)을 종 부리듯
④ “왕명(王命)이 모두 고자(鼓者)한테서 나온다”
⑵ 무신(武臣)
① 문인(文人), 환관, 내시에게 무식한 놈이라고 무시 당함
② 왕의 잦은 궁궐밖 출입, 주연으로 호위병(무신)의 불만 고조
③ 반란의 기회를 엿봄
3. 정중부의 난 : 경인년(庚寅年)에 일어났다고 해서 ‘경인의 난’이라고도 한다.
⑴ 고려
① 문반, 무반
ⓐ 1~9품에 이르는 단일 관계체제 안에 일원적으로 편성
ⓑ 양반체제 형성
② 문반
ⓐ 정치권력을 독점
ⓑ 군대를 지휘·통수하는 병마권(兵馬權)까지 장악
ⓒ 10~11세기 이래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발생한 부(富)를 대부분 독점
③ 무반
ⓐ 귀족 정권을 보호하는 호위병의 지위로 추락
ⓑ 문반에 비해 경시되고 훨씬 세력이 미약
ⓒ 군인전(軍人田)조차 문반에 탈점되어 불만 고조
④ 의종
ⓐ 정치기강 문란
ⓑ 국가재정 낭비
ⓒ 백성에 대한 착취 가중
ⓓ 무인에 대한 천대 극심
⑵ 정중부의 난
① 1170년 8월, 의종이 문신들과 보현원에 가게 되었을 때 이의방(李義方), 이고(李高)와 함께 거사를 일으키기로 모의
ⓐ 김부식(金富軾)의 아들 김돈중(金敦中)이 자신의 수염을 촛불로 태웠던 사건
ⓑ 문신 한뢰(韓賴)가 대장군(大將軍) 이소응(李紹膺)의 뺨을 때린 사건
② “문관(文冠)을 쓴 자는 서리(胥吏)라도 씨를 남기지 말고 모조리 죽여라”
③ 의종의 회유책 : 무신을 여러 중책에 임명
④ 왕을 환궁(還宮)시켜 군기감(軍器監)에 구속, 마침내 거제도(巨濟島)로 축출
⑤ 왕제(王弟) 익양공(翼陽公) 호(晧 : 명종)를 왕으로 추대
ⓐ 벽상공신으로 봉해짐
ⓑ 정사를 좌우
⑥ 무인 집권 : 정치권, 행정권, 군사권 독점
⑦ 무인에게 호의적인 문신인 문극겸(文克謙), 이공승(李公升), 서공(徐恭) 등을 기용
→ 정중부의 난을 계기로 약 1세기 동안 ‘무인정권시대’가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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