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국대장공주 인덕왕후

 ⑴ 원나라 종실 위안의 딸, 본명은 보탑실리

 ⑵ 공민왕이 원나라에 입조해 있던 1351년에 공민왕과 결혼

 ⑶ 1351년, 공민왕은 즉위후 그녀를 숙옹공주에 봉하고 숙옹부 설치

 ⑷ 결혼 8년이 될 때까지 아이가 없었다

  ① 1359년 이제현의 딸을 궁중으로 맞이함

  ② 혜비 이씨에 대한 질투로 식음 전폐 : 궁녀, 내관의 비방

 ⑸ 1365년 2월 난산(難産)으로 아이를 낳지 못하고 사망

  ① 공민왕 : 정사를 하지 않았고 3년동안 육식을 하지 않았다.

  ② 1365년 4월, 대신 : ‘인덕공명자예선안왕태후’

  ③ 1366년, 원 : ‘노국휘익대장공주’ - 공민왕 선택


2. 혜비 이씨

 ⑴ 이제현의 딸로서 1359년 5월 입궁

 ⑵ 왕의 명령으로 홍륜, 한안 등이 여러 왕비를 겁탈하려 하자 이를 강력히 거부

 ⑶ 공민왕 : 그녀를 죽이려 했으나 실행하지 못함

 ⑷ 1374년 9월, 공민왕 살해후 출가하여 여승이 됨


3. 익비 한씨

 ⑴ 종식 덕풍군 왕의의 딸, 외가의 성씨를 따른 듯

 ⑵ 노국공주가 죽은후 익비에 책봉

 ⑶ 자식을 얻기 위해 공민왕이 홍륜, 한안 등 측근 젊은이로 하여금 왕비를 겁탈하도록 지시 : 익비는 복종, 아이 잉태

 ⑷ 공민왕 : 자신의 자식으로 속이려고 홍륜 등을 죽이려다가 되레 피살

 ⑸ 딸 출산

 ⑹ 1388년, 위화도 회군(이성계)후 국새를 맡음

  ① 이성계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왕의 아들 창을 왕으로 추대

  ② 이성계 등이 창왕을 폐하자 이성계 일파의 건의를 받아들여 공양왕을 왕으로 세우라는 교서 내림

  ③ 공양왕 : ‘정숙선명경신익성유혜왕대비’ 칭호 올림

 ⑺ 1392년 조선 개국후 기록은 없으나 고려 왕족들이 강화도행 배를 탔다가 수장되었기 때문에 그러하지 않을까 추측


4. 정비 안씨

 ⑴ 죽주 사람으로 죽성군 안극인의 딸, 1364년 입궁

 ⑵ 마암의 영안전 공사를 중단할 것을 건의

  ① 공민왕 : 그녀를 쫓아냄

  ② 얼마후 곧 소환

 ⑶ 왕의 명령으로 홍륜, 한안 등이 겁탈하려 하자 목을 매 죽으려고 하자 왕이 중단시킴

 ⑷ 우왕과의 관계

  ① “나의 후궁들 중에는 왜 어머니 같은 이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② 여러번 그녀를 취하려고 함

  ③ 간통했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사실 무근

  ④ 동생 판서 안숙로의 딸을 우왕에게 보여줘 ‘현비’로 삼게 함

 ⑸ 이성계 옹립전교를 내린 덕분에 조선왕조 개창 이후에는 생존


5. 신비 염씨

 ⑴ 서원현 사람으로 곡성부원군 염제신의 딸

 ⑵ 노국공주 사망후 입궁

 ⑶ 홍륜, 한안 등이 왕의 명령으로 겁탈하려 하자 거절

 ⑷ 공민왕 피살후 여승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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