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2세기 전후 고려
⑴ 생산력 발전을 수반하여 정치 사회 구조가 변화하는 시기
⑵ 농업생산 증진
① 잉여축적이 가능
② 각 계층간의 분화가 심화
⑶ 지배층 내부의 대립
① 기존의 특권 귀족세력과 신흥세력간의 갈등
② 김부식(金富軾)을 대표로 하는 개경 중심의 문벌귀족
ⓐ 유교를 정치이념과 학문체계로 수용 : 합리적인 정치운영 지향
ⓑ 보수적이고 사대적(事大的)인 성격
③ 지방출신의 신흥세력
ⓐ 도교의 풍수지리설과 같은 전통사상에 유교사상을 결합
ⓑ 토속적이고 전통적인 성격을 강조
ⓒ 고려왕조의 국가적 자주성을 내세우며 문벌귀족의 사회적 폐단을 지적
ⓓ 개혁정치를 희구
ⓔ 묘청, 정지상(鄭知常), 백수한(白壽翰) 등이 중심
ⓕ 풍수지리설을 바탕으로 서경천도론(西京遷都論), 칭제건원론(稱帝建元論), 금국정벌론(金國征伐論) 등을 주장
2. 묘청의 난
⑴ 인종(1122~1146 재위)
① 칭제건원론, 금국정벌론 거절
② 서경천도론에 호의적
→ 내외적 위기의식이 가중됨에 따라 고려왕조 스스로가 국가의 기틀을 공고히 하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을 반영한 것
③ 김부식 등의 개경 문벌 귀족 : 서경천도론을 반대
ⓐ 유교입장에서 보면 풍수지리설은 미신적이고 비합리적
ⓑ 서경천도에 대한 정치적 위기의식이 가중
ⓒ 서경에서 재이(災異)가 자주 발생 : 서경 천도를 반대하면서 묘청의 처단을 요구
⑵ 1135년 1월, 난(亂) 야기
① 분사시랑(分司侍郞) 조광, 병부상서(兵部尙書) 유참 등과 함께 서경에서 일으킴
② 국호를 대위(大爲), 연호를 천개(天開), 군대 이름을 천견충의군(天遣忠義軍)
③ 개경 출신의 인사 대부분을 감금
④ 군사 교통의 요지인 절령(황해 자비령)을 차단
⑤ 주요 관직에 모두 서경인으로 임명
⑶ 진압
① 정부 관군의 총책임자로 김부식을 임명
② 군사통솔의 책임자를 문벌 귀족들로 구성
③ 김부식
ⓐ 출정에 앞서 개경에 있는 백수한, 정지상, 김안 등의 서경천도파 살해
ⓑ 평산, 관산을 거쳐 서경으로 진군
④ 묘청 군대
ⓐ 약 1년간 관군에게 저항
ⓑ 1136년 2월, 항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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