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거란의 2차 침입때 회군 조건
⑴ 고려 왕의 거란 친조(親朝)
⑵ 강동 6주 반환
⑶ 고려
① 왕이 아프다는 핑계로 거란에 친조하지 않고 대신 형부시랑 진공지를 파견
② 강동 6주 반환도 거부
2. 강감찬의 귀주대첩(龜州大捷, 1019)
⑴ 1018년 12월, 소배압(簫排押)이 지휘하는 10만 대군 침입
⑵ 고려 : 침입을 예상하고 20만 군대 조성 - 상원수는 평장사 강감찬
⑶ 1019년, 고려군이 거란군을 구주(龜州, 강동 6주의 하나)에서 크게 물리친 싸움
① 강감찬과 강민첨(姜民瞻)을 보내어 흥화진성의 삼교천(三橋川)에서 대적
② 패배한 거란은 강동 6주를 우회하여 개경 공격을 시도
③ 자주(慈州:지금의 평남 자산)에서 다시 강민첨의 공격을 받아 패배
④ 거란은 계속 남진하여 개경 근방까지 왔다가 승산이 없다고 판단, 퇴각
⑤ 강감찬은 구주에 병사를 매복시켜 후퇴하는 거란군을 공격, 거의 전멸
⑥ 거란의 10만 군사 중 살아돌아간 자는 수천 명
3. 1020년, 양국의 국교 회복
⑴ 거란의 연호 사용
⑵ 송과 외교 단절
⑶ 거란이 요구한 국왕 친조와 강동6주의 반환은 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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