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출지 : 경주 남산 아래 통일전 주차장 남쪽에 있는 연못


2. 배경 설화

신라 21대 소지왕(炤知王)이 즉위하신 지 10년 되던 해(488년) 정월 15일이었다. 임금은 신하를 거느리고 천천정(天泉亭)에 행차하셨다. 임금이 가마에서 내렸을 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어대더니 쥐가 사람처럼 말을 했다. “이 까마귀 가는 곳을 살피시오” 임금은 이상히 생각하여 장수 한 사람을 시켜 까마귀를 따라가게 했다. 장수는 까마귀를 따라 이곳 저곳 쫓아다니다가 남산 동쪽 기슭에 있는 양피촌(壤避村) 못가에 이르러 큰 돼지 두 마리가 싸우고 있는 것을 보았다. 두 눈에 불을 튕기면서 엎치락뒤치락하며 무섭게 싸우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 동안 장수는 그만 까마귀가 간 곳을 놓쳐 버렸다.


장수는 정신이 아찔하여 어떻게 하면 까마귀 간 곳을 찾을 수 있을까 하고 못가에 앉아 궁리하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못 가운데서 크게 물결이 일더니 풀옷을 입은 한 노인이 물속에서 나타났다. 노인은 처벅처벅 장수앞으로 다가오더니 “이 글을 임금님께 전하시오”하며 글이 써있는 봉투를 건네주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장수는 꿈만 같아서 정신을 가다듬고 살펴보았다. 틀림없이 손에는 봉투가 쥐어 있고 물위에는 아직도 노인이 사라져 들어간 파문이 둥글둥글하게 약간 남아 있었다. “살았다! 까마귀는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 준 것이구나”하고 장수는 급히 천정을 향해 뛰어갔다. 임금이 봉투를 받아 보니 “열어 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어 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라고 쓰여 있었다. 임금은 두 사람이 죽는 것보다는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나은 일이니 열어보지 않기로 하였다. 이 때 나라 일을 예언하는 일관(日官)이 아뢰었다. “두 사람은 평민이옵고 한 사람은 임금을 가리킴이오니 열어 보시는 것이 옳을까 아뢰옵니다” 여러 신하들도 그럴 듯하여 열어 보기를 간청하였다. 임금은 여러 신하들 의견에 따라 봉투를 뜯어 종이를 펴 봤더니 ‘거문고 갑을 쏘라’(射琴匣)라고 씌여있었다. 왕은 급히 대궐로 돌아가서 왕비의 침실에 세워 놓은 거문고 갑을 향하여 화살을 날리었다. 쿵! 화살이 금갑에 박히자 그 속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금갑을 열어 봤더니 왕실 내전에서 불공을 드리는 중과 왕비가 있었다. 중은 왕비와 짜고 임금을 해치려 하다가 임금이 급히 대궐로 돌아옴에 거문고 갑속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중과 왕비는 곧 사형되었다. 그 글처럼 두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임금이 살게 되었다.


그 후부터 나라에서는 정월 보름날을 오기일(烏忌日)로 정하고 제사를 드리게 했다. 이때 오곡밥을 조금씩 담위에 얹어 놓는데 이러한 풍속은 까마귀를 위함이라고 한다. 그리고 매달 첫째 돼지날과 쥐날과 말날에는 모든 일을 조심하여 무슨 일이든 하지 않고 집에 가만히 앉아 있는 풍습이 전해 왔다. 이 일로 인하여 못 이름을 서출지(書出池)로 부르게 되었다하는데 이 이야기는 외래종교인 불교 전래 과정에서 토착 신앙과의 갈등을 잘 나타낸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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