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주장 : 백두산정계비는 원래 소백산에 있었다.
중국에서는 백두산정계비를 소백산에서 백두산으로 옮겼다는 ‘정계비 이동설’을 주장하여 국경 문제에 새로운 파문을 던지고 있다. ‘정계비 이동설’에 따르면 당시의 기록과 지형·경계표지 등을 면밀히 검토해 보면 두만강이 시작하는 지류는 홍단수(紅丹水)이고 백두산정계비의 원래 위치는 소백산 정상이다. 정계비 건립 직후 조선측 관리들이 정계비를 백두산 남쪽 기슭으로 옮기고 정계비와 토문강 사이에 목책·돌무더기·흙무더기 같은 경계 표지를 설치하여 경계를 조작하였다고 한다. 19세기 이래 국정회담에서 백두산정계비를 기준으로 경계를 정했음을 생각할 때 이 논리대로라면 백두산에서 남쪽으로 20km가량 내려온 소백산이 정확한 국경이 되는 셈이다.
‘정계비 이동설’은 이미 청·일간의 간도문제 교섭 당시부터 제기되었던 문제인데 최근에는 이를 더욱 정교화하여 4차례에 걸친 위치 이동이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의 기록이나 고(古)지도를 살펴보면 ‘정계비 이동설’이 허구라는 점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백두산정계비 건립 이후 백두산에 오르면서 백두산정계비를 보았던 사람들의 기록에서 백두산정계비의 위치는 대체로 일치한다. 당시 사람들은 백두산에 오르기 위하여 삼지연·소백산·연지봉을 거쳤으며 연지봉을 지나 백두산에 오르는 도중에 백두산정계비를 보았다. 또한 백두산정계비 건립 당시에 그린 「백두산정계비도」와 이후 백두산 일대를 그린 각종 고지도를 살펴보아도 백두산정계비의 위치는 대체로 동일하다. 고지도에는 백두산과 연지봉 사이에 백두산정계비가 그려져 있고 그 옆에 분수령이라고 적혀 있다.
* 백두산정계비 : 1712년 조선과 청국의 조사단이 압록강과 두만강 상류지역을 조사하고 백두산 동남쪽 기슭에 세운 비석이다. 비석에 새겨진 ‘서쪽으로는 압록강을 경계로 삼고 동쪽으로는 토문강을 경계로 삼는다’(西爲鴨綠 東爲土門)라는 구절 중 토문강이 어느 강을 가리키는가라는 점이 논란이 되었다. 1931년 비석은 사라지고 현재는 받침돌만 남아있다.
* 홍단수 : 백두산 인근에서 발원하는 두만강 원류 중의 하나이다. 백두산 인근에서 발원하는 두만강 원류로는 홍토수(紅土水), 석을수(石乙水), 홍단수(紅丹水)가 있으며 이중 홍토수가 가장 북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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