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은 전쟁발발 3일 만인 1950년 6월 28일에 서울을 점령하고 7월 1일까지 3일간 지체함으로써 한국군과 미군은 병력을 수습하여 한강방어선을 형성할 수 있었고 낙동강방어선까지 지연작전을 펼칠 수 있었다. 그러면 북한군은 서울을 점령하고 왜 3일간 지체했을까? 여러 얘기가 있는데...


1. 한강을 건널 수 있는 도하장비 부족

 ⑴ 전쟁 전 북한군 : 소련에 도하장비 5개 세트를 요청

 ⑵ 1개 세트만 지원받아서 도하장비가 부족

 ⑶ 6월 27일부터 시작된 미 공군의 폭격

  ① 도하 준비 중인 북한군이 많은 피해를 입음

  ② 보병 : 야간에 수영과 목선, 뗏목을 이용하여 도하

  ③ 전차와 중장비, 차량 등 : 완파되지 않은 경부선 철교를 복구하여 도하


2. 남한 내부의 인민 봉기를 기다렸다

 ⑴ 박헌영 : “서울을 점령하면 남로당 당원 20만 명이 봉기할 것이다”라고 공공연히 주장

 ⑵ 북한군 작전국장이었던 유성철의 증언 :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면 남로당원들이 봉기해서 군사적으로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남한을 완전히 점령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북한군이 서울에서 3일을 기다려도 봉기는 일어나지 않고, 또 예상보다 빨리 미군이 참전하는 바람에 북한군은 작전을 바꿔 남하하게 되었다”


3. 서울 점령의 승리감에 도취되어 기본 임무를 망각

 ⑴ 제 3, 4사단과 사단으로 승격시킨 제 105 전차사단에 ‘서울 사단’의 칭호를 부여하는 등 자축과 점령 정책에 치중

 ⑵ 전투 휴식과 정비로 작전 템포를 상실

 ⑶ 6월 30일 제 13 사단에 서울 위수업무를 부여하고 본격적으로 한강 도하작전을 개시


4. 북한군 제 2 군단의 춘천 점령 지연으로 최초 계획에 차질이 발생

 ⑴ 북한군의 1 단계 작전

  ① 제 2 사단과 제 6 사단 : 한강 이남에서 양익 포위

  ② 제 603 모터사이클 연대 : 수원 이남으로 포위하여 국군의 퇴로를 차단

 ⑵ 김포반도로 공격한 제 6 사단의 영등포 점령이 지연

 ⑶ 제 2사단의 춘천 점령 지연 : 6월 29일 20:00시가 되어서야 팔당 일대의 한강까지 진출

 ⑷ 제 12 사단의 홍천 점령 지연 : 제 603 모터사이클연대를 수원 방향 진출 좌절

 ⑸ 제 2 군단의 진출과 협조된 작전을 위하여 서울에서 3일간 지체


5. 김일성의 계획

 ⑴ ‘서울을 점령한 후, 당시 국회의원들을 소집해 이승만 정부를 퇴출시키고 통일 정부를 수립’

 ⑵ 3일간 지체하며 본래의 계획을 수행하려 했으나, 계획이 실패

 ⑶ 남한 전체를 점령하는 확전을 감행

 → 625 전쟁의 전략을 수립했다는 소련의 문서나 증언에는 없는 주장으로 신빙성 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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