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민씨정권 등장과 강화도조약 체결
⑴ 대원군이 퇴진하고 등장한 민씨정권은 서원을 다시 세우고 세금을 감면해 주었으나 매관매직이 다시 성행하고 정치기강이 혀물어지고 국가재정이 어려워짐
⑵ 운요호 사건(1875년) : 일본 선박 운요호가 강화도에 접근하여 일어난 포격 사건 ⇒ 조일수호조규(강화도 조약)을 체결
⑶ 조일수호조규(강화도 조약)
① 조선이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
② 불평등조약
⑷ 각국과의 조약 체결
① 조미수호통상조약(1882)
②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1882)
③ 1886년까지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과 통상조약
⑸ 각국과 통상조약을 체결한 결과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강제로 편입
2. 개항정국과 임오군인봉기
⑴ 민씨정권의 개화정책(동도서기론)
① 통리기무아문 설치
② 5군영을 2군영으로 편제
③ 신식 군대 창설
④ 일본에 수신사
⑤ 청에는 영선사 파견
※ 동도서기론 - 조선왕조의 사회체제와 통치이념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서양의 발달한 과학기술과 상공업제도를 받아들이려는 생각
⑵ 개항은 굴욕적인 조약 과정일뿐 경제적 침탈을 의미하므로 여론은 좋지 않음
⑶ 임오군인봉기(1882) : 개화정책 반대, 구식군인들이 신식군대의 차별대우가 원인
① 전개 : 민씨 측근의 집 공격 → 일본 공사관 습격 → 경복궁 습격 → 민씨 피난 → 대원군 일시 정권 장악 → 민비의 요청으로 청 군대 출동 → 대원군 납치 → 민씨 정권 재집권
② 결과
ⓐ 일본과 제물포 조약(1882)
ⓑ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1882)체결(청의 내정 간섭)
3. 서양문물의 유입과 무역구조의 변화
⑴ 서양문물은 불평등조약을 바탕으로 들어온 외래자본이었고 무역을 위주로 하면서 국내 상업, 은행, 고리대 등 유통분야 장악
⑵ 미면교환체제(식민지 무역)
① 일본상인들이 국내 유통기구를 장악함으로써 생긴 무역관행
② 조선의 쌀과 면화를 싸게 사서 수출하고 면제품 등 자본제상품을 수입해서 비싸게 팔고 큰 이익을 남김
③ 국내 쌀값 인상, 지주와 부농과 상인들의 자본축적, 농민들은 몰락
⑶ 화폐제도 문란과 고리대 성행
4. 개화파의 개혁운동
⑴ 개화사상의 형성과 초기 개화운동
① 개항을 불가피한 시대적 흐름으로 알고 봉건체제를 개혁하려는 개화운동이 힘을 얻음
② 개화운동의 초기에는 일부 중인층이 참여하여 개화파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
③ 개화운동은 주로 양반 관료층에 속하는 김옥균, 서광범, 박영효 등 신지식층이 중심이 된 위로부터의 근대화운동
ⓐ 온건 개화파(청의 양무운동을 모방해 점진적 개혁을 추구) - 김홍집, 어윤중, 김윤식
ⓑ 급진 개화파(청의 내정간섭 배제, 급진적 개혁) -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등
④ 개화파들은 일본의 차관 실패, 청의 간섭과 민씨일파의 방해로 좌절
⑵ 갑신정변(1884) ⇒ 낡은 봉건체제에서 근대자본주의 사회로 발전시키려 한 최초의 시도
① 개혁파들은 우정국 낙성식을 이용하여 일대 정변을 일으켜 민씨정권에 반대하는 왕실과 연합해 새 정부 구성
② 개화파정권의 14개조 정강 발표
③ 3일 천하 : 후원을 약속한 일본의 배신과 청군의 개입으로 정변은 실패로 돌아가고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등 9명이 일본으로 망명하고 3일만에 막을 내림
④ 실패 요인
ⓐ 국민적지지 기반 미약
ⓑ 외세에 의존한 정변 도모
ⓒ소수의 급진적 개혁운동
⑶ 갑오개혁(1894)
① 일본은 조선에 대한 내정간섭을 통해 경제적 이권 탈취와 조선침략의 기반을 닦기 위해 친일개화파 정권을 세움
② 1차 개혁
ⓐ 군국기무처를 중심으로 개혁 추진
ⓑ 왕실의 정치개입을 배제할 목적으로 궁내부 설치
ⓒ 의정부를 종전 6조에 외부, 농상을 더하고 명칭도 내무, 탁지, 군무등 8아문으로 개칭
ⓓ 과거제 폐지하고 인물본위의 새로운 관리 임용법 마련
ⓔ 관리임용에서 신분차별 폐지
ⓕ 재정기관을 탁지부로 일원화
ⓖ 은본위제도의 화폐제도 실시, 도량형 통일
③ 2차 개혁
ⓐ 김홍집, 박영효 연립내각 구성, 군국기무처 폐지
ⓑ 홍범 14조를 발표해 청의 간섭과 왕실의 정치개입을 배제
ⓒ 각급 정부기관의 정비와 개혁을 추진하였으나 탁상공론에 그침
ⓓ 항일 의병 발생 - 민비 시해(을미사변)와 단발령 단행
ⓔ 아관파천(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으로 개혁 중단
④ 갑오개혁은 근대적인 개혁운동이었으나 자주성을 상실하였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5. 1894년 동학농민운동(갑오농민전쟁) : 아시아의 3대 농민전쟁 가운데 하나
⑴ 동학농민운동(갑오농민전쟁)의 배경(1890-1893년 사이 집중)
① 삼정문란과 농민에 대한 수탈은 개항 뒤 불평등 무역구조가 확대되면서 더욱 깊어짐
② 동학은 농민항쟁의 한계를 극복하는데 중요한 역할
③ 1차, 2차 교조신원운동, 3차 보은 집회의 교조신원운동 과정에서 대규모 농민전쟁 예고
※ 교조신원운동 : 참형된 최제우의 억울한 죄상을 사면해 달라는 신도들의 신앙 운동
⑵ 고부 농민봉기
① 고부는 조선 제일 벼농사지대로 쌀이 일본으로 빠지면서 농민수탈이 매우 심하였다.
② 고부군수 조병갑의 횡포와 착취에 항거, 전봉준이 농민을 이끌고 고부 관아 점령(1894)
③ 조사하러 온 이용태는 모든 책임을 동학에 돌리고 농민들을 수탈하고 학살
※사발통문 - 주모자를 알 수 없도록 사발로 그린 원 주위에 전봉준 등 20여 명의 이름을 쓴 문서
⑶ 제1차 농민전쟁(1894. 3. 20)
① 이용태의 만행을 지켜본 전봉준은 손화중, 김개남 등과 전라도 무장에서 봉기
※ 백산창의비(전북 정읍) - 농민군의 1차 집결지
② 동학 농민군은 ‘보국안민’을 내걸고 황토현과 황룡촌싸움에서 승리하고 전주성에 입성
⑷ 폐정개혁 활동
① 동학 농민이 폐정개혁안을 중앙에 보고하여 시행할 것과 농민군의 신변을 보장한다는 조건으로 하는 전주화약(1894. 5. 8)을 맺고 전주성을 떠남
※ 폐정개혁안 - 삼정을 비롯하여 탐관오리 문제, 외국상인의 침투 등 여러 가지 폐단에 대해 개혁 요구
② ‘관민상화’의 원칙에 따라 집강소를 설치하여 치안질서를 바로잡는데 우선을 둠
※ 집강소 : 동학농민이 전라도 일대에 설치한 지방행정기구(군사적 기능은 없음)
⑸ 제2차 농민전쟁(1894. 10)
① 청일전쟁에 승세를 잡은 일본이 내정 간섭 강화, 갑오정권은 일본군에게 농민군을 토벌해 달라고 요청함으로 다시 일어남
② 농민군은 우금치 싸움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후퇴 후 패배 거듭
③ 전봉준 체포로 동학운동 실패
④ 농민전쟁은 갑오개혁의 추진력으로 작용, 한말의 농민항쟁과 반일의병전쟁으로 계승
'우리 역사 이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학농민운동(東學農民運動)=갑오농민전쟁(甲午農民戰爭) (0) | 2018.02.20 |
---|---|
궁녀 고대수 (0) | 2018.02.20 |
대원군 정책 (0) | 2018.02.20 |
홍경래(洪景來)의 난 (0) | 2018.02.14 |
안동 김씨 세도 정치(勢道政治) (0) | 2018.0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