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헌세자(莊獻世子, 사도세자로 더 알려져 있음)
⑴ 어릴때 행적
① 영조 둘째 아들, 영빈 이씨의 소생
② 이복형인 효장세자가 일찍 죽고 영조 나이 40세가 넘어서 출생 : 2세때 세자 책봉
③ 홍봉한의 딸 혜빈 홍씨(10세)와 혼인
④ 3세,『효경』을 읽음
⑤ 7세,『동몽선습』독파
⑥ 10세, 소론측이 주도한 ‘신임옥사’ 비판
⑵ 1749년 15세, 대리청정(代理聽政)
① 그를 싫어하던 노론,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 김씨, 숙의 문씨 등이 그를 무고
② 성격이 과격하고 급하던 영조 : 수시로 그를 불러 질책
③ 정신 질환 증세 보임 : 장인 홍봉한의 말로 추측해보면 ‘조울증’인 듯
ⓐ 궁녀 살해
ⓑ 여승 입궁
ⓒ 몰래 궁을 빠져나가 관서 지역 유람
⑶ 1762년, 나경언 : 세자의 비행 10조목을 상소
① 김한구(계비 김씨의 아버지)와 그 일파인 홍계희, 윤급 등의 사주(使嗾)
② 영조 : 세자를 죽이기로 결심
ⓐ 세자를 휘령전으로 불러 자결하라고 명령
ⓑ 세자 거부
ⓒ 세자를 뒤주에 가둬 8일 만에 굶겨 죽임 : 28세
⑷ 영조
① 세자를 죽인 것을 후회
②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는 의미로 그에게 ‘사도’(思悼)라는 시호(諡號)를 내림
③ 정조가 즉위하자 ‘장헌’으로 추존(推尊) → ‘장조’로 추존
2. 혜빈 홍씨
⑴ 영의정 홍봉한의 딸, 정조의 어머니
⑵ 1744년, 세자빈에 책봉 : 사도세자와 혼인
⑶ 1762년, 사도세자가 죽은 뒤 혜빈에 추서(追敍)
⑷ 1776년, 정조 즉위후 궁호(宮呼)가 ‘혜경’으로
⑸ 1899년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존됨에 따라 ‘경의왕후’로 추존
⑹ 아버지 홍봉한, 숙부 홍인한은 외척이면서도 세자 살해를 지지하는 입장이어서 그녀는 세자의 참담한 운명을 지켜볼 수밖에
⑺ 1795년, 『한중록』(閑中錄) : 남편의 참사를 중심으로 자신의 일생을 적은 책으로 궁중 문학의 효시(嚆矢)
※ 사도세자가 영조에게 죽임을 당한 이유는?
1. 조선조 21대 영조의 큰 아들 사도세자(장헌세자 → 장조)
⑴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 속에 갇혀 죽음
⑵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나중에는 갈증을 이기려고 자기오줌까지 받아 먹음
⑶ 고통에 뒤주 벽을 긁다 손톱이 다 빠지는 등 비참한 최후
⑷ 사도세자의 죽음 : 다양한 학설이 제기
① 당파싸움의 희생양
② 정신병을 앓았다
2. 사도세자가 영조의 진노를 산 계기
⑴ 『영조실록』
① 궁중에서 하인과 궁첩 등을 칼로 죽임
② 여승을 궁으로 불러들임
③ 시전 상인의 재물을 빌려 갚지 않음
④ 북성 유람과 평안도 여행
⑵ 『한중록』(閑中錄) : 사도세자가 궁에 방화
3. 사도세자가 궁에서 사람을 죽인 이유 : 울화증, 신경쇠약 증세
⑴ 사도세자가 대리청정 기간 중 당론을 잘못 처리했다는 이유 등으로 영조의 분노를 샀던 사건 때문에 발병
⑵ 사도세자는 홍역을 앓고 있는 몸으로 며칠간 한겨울 눈 위에서 석고대죄해야 했던 탓에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것
⑶ 사도세자 죽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아님
4. 홍이섭
⑴ 사도세자의 잘못 중 ‘평안도 여행’에 주목
⑵ 평안도
① 정치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
② 조선 변방을 지키는 정예군이 주둔
③ 곡식은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고 현지에서 조달이 가능
④ 여러 조건들이 평안도가 쿠테타를 획책하는데 매우 적절한 장소
5. 박광용
⑴ 사도세자 관련된 기록 : 사도세자의 쿠테타 계획을 숨기고 개인적인 비리로 희석시켜 짜맞춰진 것일 가능성이 높다
⑵ 사도세자의 쿠테타 획책설
① 평안도 방문시 행적에 관한 사료가 충분히 남아있지 않음
② ‘역사적 가정’
'우리 역사 이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동 김씨 세도 정치(勢道政治) (0) | 2018.02.13 |
---|---|
정조 암살 시도 (0) | 2018.02.12 |
영조(英祖, 1724~1776 재위)의 탕평책(蕩平策) (0) | 2018.02.11 |
장희빈(張禧嬪) (0) | 2018.02.10 |
숙종(肅宗, 1674~1720 재위) : 정치옥사(政治獄事) (0) | 2018.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