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왜 고조선인가?
⑴ 고조선 계승 의식
① 한국 고대의 모든 국가와 종족들에게까지 확대
② 『삼국사기』, 『삼국유사』<단군본기> 등
⑵ 고조선 : 기원전 2세기때까지 동북아 지역에서 가장 앞선 사회, 변화의 중심
① 한국 고대 문화가 모두 고조선에서 비롯한 것은 아니다
② 고조선이 고대의 전체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며 고대 한국에 존재하였던 여러 국가나 집단중의 하나일 뿐
③ 고조선 문화에서 한국 문화의 원형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④ 한반도와 남만주 지역에서 형성된 가장 이른 시기의 국가
⑤ 고조선 청동기 문화
ⓐ 북중국 청동기 문화(황화 유역)나 유목민의 오르도스식 청동기 문화와는 차이가 난다
ⓑ 철기 문화를 수용하여 새로운 발전을 도모하나 기원전 108년 한 제국 침공으로 멸망
ⓒ 인근 여러 종족 집단에 영향
⑥ 위치 : 사료(史料) 및 연구 부족으로 확실한 정설(正說)은 없다
ⓐ 요동중심설(遼東中心說) : 중국 요령성 지역
ⓑ 대동강중심설(大同江中心說) : 평양
ⓒ 이동설(移動說) : 요하 유역에서 평양 지역으로 이동
⑶ 고조선 왜곡 모습
① 일제 식민주의 사가 : 고조선 자체를 부정
ⓐ 한국사에 청동기 시대가 존재하지 않았다
ⓑ 위만(중국인) 집단의 이주와 정복, 한사군 설치에 의해 금속기 문명 시대로
ⓒ 단군신화 : 몽고 항쟁때 민족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 지정학적 숙명성론 : 반도라는 지정학적인 위치에 의해 불가피한 숙명
② 중국 : ‘고구려는 중국사이다’라는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고조선사가 중국사’임을 강조
ⓐ 고구려사 무대가 고대 중국의 역사 영역
ⓑ 기자조선, 위만조선 : 중국인이 조선 땅에 와서 건국한 나라
ⓒ 한(漢)제국이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한 현도군에서 고구려 발생
ⓓ 낙랑군, 현도군, 대방군 등 한 군현이 설치되었던 지역이 고구려 영역의 주요 부분
ⓔ 고구려 건국과 발전은 중국 역사 영역을 무대로 전개되었으므로 고구려사는 중국사
③ 기자조선(기자동래설)의 문제점
ⓐ 요동 지역과 한반도 북부에는 상(商)·주(周) 계통의 청동기 유물이 많이 출토되어야 하고 토착민과 융합했다면 이 지역의 청동기 유물 유적에서 상·주 계통 청동기 문화의 영향이 작용한 흔적이 있어야 한다 : 고조선 청동기 문화는 ‘비파형 동검문화에서 세형 동검문화’로 이어지는 것으로 상·주 청동기 문화와는 계통이 다르다
ⓑ 기자가 처음으로 보이는 역사서는 기원전 2세기 후반의 『상서대전』(尙書大典)
- 기자가 살았다는 시기에서 800여년 뒤
- 한 제국이 동방으로 팽창해 나가려 함에 따라 고조선 지역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그 지역에 대한 역사적 연고권을 설정하려는 의도 등이 작용한 듯
ⓒ 『사기색은』(史記索隱) : 기자 묘가 하남성 몽현(蒙縣)에 있다고 되어 있다
④ 위만조선 : 국가 구조를 볼 때 중국계 유이민 집단과 토착 고조선계 집단이 함께 참여한 연합 정권이고 중국계 사람과 토착민을 차별하는 이중 구조를 지닌 한사군의 성격과 다르다
∴ 기자조선, 위만조선을 중국계 사람의 이주와 정복에 의해 세워진 나라로 보아 한반도 북부와 요동 지역을 중국의 역사영역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토착 주민인 고조선인과 고조선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
2. 고조선은 언제 어디에 있었을까?
⑴ 신화를 바탕으로 한 전승 : 『삼국유사』, 『제왕운기』
① 고조선이 시간의 흐름과 통치 집단의 성격 변화에 따라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으로 변모
② 순전한 역사적 사건이라기보다는 여러 맥락에 의해 변형된 이야기 성격이 강하다
⑵ 현실적 사건을 바탕으로 한 전승 : 『사기』, 『위략』
① 고조선에 관해선 가장 믿을 만한 역사 기록
② 기원전 4세기 고조선 ~ 기원전 108년 위만조선이 한(漢)에게 멸망, 낙랑(樂浪)·현도(玄菟)·진번(眞番)·임둔(臨屯)군 설치까지 기록
③ 통치 집단을 기준으로 할때 위만조선과 그 이전의 고조선으로
④ 역사적 사건에 드러나 있는 단계성을 기준으로 할때
ⓐ 조선후(朝鮮侯)대의 고조선
ⓑ 준왕(準王)대의 고조선
ⓒ 위만조선
⑤ 고조선이 언제 어디에 있었는지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⑶ 고조선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낙랑군 조선현 위치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① 위만조선 도읍지 : 현(現) 대동강 남쪽 토성동 토성
② 왕성(왕험성) 부근 : 현(現) 대동강 북쪽 어디쯤
⑷ 유물 분포를 보아 파악
①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 유역 : 위만조선과 준왕대 고조선
② 요동 동부와 평북 산간 지역 : 나중에 고구려로 통합, 발전되는 맥계(貊系) 집단
③ 그 밖의 지역 : 전국연의 요동군
⑸ 위만조선 : 분명히 평양에 위치
① 압록강 이남 ~ 청천강 이북 사이 지역에 고조선의 번병(藩屛)으로 있다가 기원전 2세기 초 준왕을 축출하고 위만조선 건립
② 한초 중국 세력 영향력이 청천강에서 압록강으로 축소되었기 때문에 가능
⑹ 준왕대 이전 고조선 중심지? 요령 지역
① 의견 일치를 못보고 있다
② 준왕대 이전 고조선과 관련한 2개의 중요한 단서
ⓐ 고조선이 기원전 4세기 말~3세기 초 전국연과 전쟁에서 패해 2000여리의 땅을 빼앗기고 그 중심지를 평양으로 옮겼다 : 고조선이 빼앗긴 땅이 반드시 2000여리였다고 말할 수 없으나 이것으로 이전의 고조선이 요령지역 어딘가에 있었음이 추측 가능
ⓑ 준왕대 고조선과 위만조선이 ‘세형동검문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③ ‘세형동검문화’가 서북한의 토착 문화와 차별적인 문화성을 보임과 동시에 이보다 한단계 앞선 시기의 요령지역에서 유행한 비파형동검문화와는 연속적인 관계를 보이고 있다
3. 고조선 사람은 어떤 사람?
⑴ 예맥족 : 고조선 세력권에 포함되지 않은 지역에도 단독으로 존재
① 중국 요령성에 있는 요하 유역을 중심으로 고조선 건국
② 지역적 분화로 부여, 고구려로 이어져 주변 민족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문화 언어 발전
⑵ 위만조선 지배층 : 이주해온 중국인이 많았다
∴ 우리 민족 형성의 근간이 된 종족 = 고조선 사람인 예맥족 + 한반도 남부에 있었던 삼한(三韓)을 구성한 한족(韓族)
4. 고조선 사람은 어떻게 살았을까?
⑴ 바다대신에 강에서 물고기 잡이를 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농경으로 식량 조달
⑵ 마을 : 평균 20~30채
⑶ 국읍 : 100여채 이상
⑷ 중심 도읍지에 수천, 수만 명의 도시를 건설한 것은 2세기 이후 위만조선
⑸ 집 : 30~50cm정도 깊이를 파서 평면 장방형을 만들고 진흙과 풀을 이겨서 벽체를 세운 것이 대부분 - 돌을 쌓아 만든 집도 있다
⑹ 전문 장인 등장
⑺ 활발한 물자 교환
① 마을간의 중간 지점 또는 교통 거점지에 맞교환 장소 형성
② 고조선 후기에 시장 형성
③ 화폐 사용 여부 : 중국 전국시대나 진·한대 화폐를 제한적으로 활용
⑻ 지배층 생활
① 청동 무기, 검, 창 보유 : 평상시에는 권위의 상징으로 휴대하다가 전쟁시 무기로 사용
② 일반 군사 : 돌검, 목기로 무장
③ 수레, 청동 단추로 장식한 장화, 상당 수준의 옷(감)
④ 궁정 시설 : 고조선 말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
⑼ 탁자식 고인돌
① 죽은 조상에 대한 의례 행위 거행
② 마을 구성원이 전부 참여하는 공동체 전체의 축제 거행
5. 신화속에 그려진 고조선
⑴ 신화?
① 신화에 대한 오해 : 신화는 허구이며 사실을 말하는 역사가 아니다
② 일종의 역사 : 우주, 인류, 문화의 기원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 주인공 : 현실 세계의 인물이 아닌 신이나 영웅
ⓑ 배경 : 현실적 시간과 공간의 좌표를 벗어나 초현실적인 시공까지 포함
ⓒ 사건 전개 과정 : 경험적 인과 관계가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 실제 있었던 일, 즉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③ 사실 여부를 따지면 안된다
ⓐ 사건을 전할 때 직설적 표현이 아니라 은유적 표현을 사용
ⓑ “사실보다 진실을 말하는데 목적이 있다”
ⓒ 과거 사실의 객관적 전달보다 그것의 현재적 의미를 드러내는 데에 중점을 둔다 : 현실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것
⑵ 단군신화 (고조선 건국신화) : 고조선이 어떻게 등장했는가를 설명하는 것
⑶ 고조선 시조가 신의 혈통을 이어받은 신성한 존재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
① 환인(桓因) : 단군 할아버지, 하늘신
② 환웅(桓雄) : 단군 아버지, 환인에게서 지상 통치권을 위임받아 지상을 통치
③ 곰 : 단군 어머니
ⓐ 유라시아 북방, 북아메리카 민족에게 산신, 신의 사자, 샤먼(shaman) 수호령, 토템(totem)등으로 숭배
ⓑ 고조선 당시에도 신성 동물 : 단군 어머니도 신성한 존재
④ 단군 : 1908세 수명을 다한 후 아사달에 들어가 산신이 되었다
⑷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논리
① 개인의 카리스마나 인간적 장점, 전통적 권위의 계승자, 선거로 국민에게서 권력 위임
② 고조선 시조는 혈통상 지극히 신성한 존재이므로 그에 의한 지배가 정당하다는 논리를 제공하는 것이 단군신화
⑸ 단군왕검(檀君王儉)
① 단군 : 무당, 제사장이라는 뜻으로 종교적 지도자를 의미
② 왕검 : 임금과 통하는 것으로 정치적 지도자를 의미
③ 개인의 이름이라기보다 고조선에서 군장을 가리키는 일반 명사 - 단군의 수명
⑹ 신화에는 역사 사실이 전혀 반영되지 않을까?
①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왔다(천강 : 天降) : 앞선 문화를 가진 종족이 이동
② 곰
ⓐ 토템미즘의 존재, 나아가 토템으로 상징되는 집단의 존재를 시사
ⓑ 토템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후진적인 사회였음을 짐작
ⓒ 환웅과 곰의 혼인 : 선진적 이주 세력과 후진적 토착 세력이 연맹하여 고조선을 탄생시켰다는 의미로 해석
③ 고조선 출현 시기는? 기원전 2333년(『동국통감』의 설(요 임금 25년)), 신석기 시대?
ⓐ 환웅이 곡식 문제를 주관 : 고조선이 농경 사회 단계로 접어 들었다
ⓑ 환웅, 곰, 호랑이 등장 : 다세포 사회
ⓒ 환웅이 곰, 호랑이 위에 군림 : 계급 출현, 집단간의 불평등 관계 존재
ⓓ 신석기 시대 : 농경이 보편화되지 않았고 사회 계층 분화도 뚜렷하지 않고 정치 권력도 등장하지 않은 사회
∴ 기원전 10세기전후 청동기 시대
④ 『삼국유사』: 단군이 처음 도읍한 곳은 아사달, 평양 - 대동강 유역
ⓐ 고대 지명은 한 지명이 한 곳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사용
ⓑ 종족이 이동하면서 지명도 함께 따라다니거나 지형이나 방위가 비슷하면 같은 지명으로 불렀다
ⓒ 평양 = 강을 끼고 있는 넓은 벌판
ⓓ 고대에는 지금의 평양뿐만 아니라 서울, 압록강 유역도 평양
⑤ 고조선 중심지는 중국 요령성의 요하 유역
ⓐ 『관자』,『산해경』,『전국책』 등 중국의 고대 기록
ⓑ 고조선을 대표하는 유물, 유적(비파형동검, 다뉴기하학문경, 미송리형토기, 돌넛널무덤, 고인돌, 돌널무덤 등) : 출토 지역이 대체로 요하 유역 ~ 청천강 이북
∴ 단군신화는 청동기시대에 요령성 요하 유역을 중심으로 고조선이라는 정치적 사회가 성립되었음을 배경으로 하는 신화
6. 동북공정속에 그려진 고조선
⑴ 동북공정 중심 연구 과제 : 고구려, 발해 문제와 함께 고조선 및 동북 고민족에 대한 연구로 고구려의 전(前) 단계 역사로서 고조선도 중국사 범주에 포함
⑵ 조선(朝鮮)
① 조선 명칭은 상·주(商·周)때 만들어진 중국문자
② 『산해경』(山海經)에 나오는 탕곡(湯谷), 『주역』(周易)에 나오는 명이(明夷)가 조선
⑶ 『사기』(史記)에 보이는 ‘새알을 삼키고 자식을 낳는 신화’ 등은 동이족의 고이(高夷) 문화이고 고이가 고구려 문화의 기원
⑷ ‘기자조선’(箕子朝鮮)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
① 기자 : 실재한 철학가, 정치가
② 주(周)와 진(秦)에 신속한 해외 속국
③ 위만조선 : 한(漢)의 외신으로 속국이었다가 한 무제의 조선 공략으로 한의 변강 지역으로 되었다
→ 기자조선이 있었기 때문에 위씨조선이 있었고 한4군이 되었으며 고구려사와 발해사로 연결되었다. 그러므로 기자조선이 바로 중국 동북사의 개시(開始)
⑸ 중국의 고대 동북 지구 3대 종족 : 숙신계(肅愼系), 예맥계(濊貊系), 동호계(東胡系)
① 세 계통의 민족 기원, 성장, 발전, 유향, 귀속 등의 내용을 정리
② 이들 활동 무대가 중국 영역이라는 사실과 중국과의 단편적인 접촉 사실 등을 부각
③ ‘동북 고민족의 발전사는 중국 역사의 범주에 종속된다’
④ 한국 학계의 단군조선-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로 연결되는 역사 계승 인식은 비학술적, 비역사적 연구의 결과라고 강하게 비판 : ‘중국 동북 고민족의 발전 맥락을 어지럽히고 중화 민족의 혈연관계를 끊었다’
⑹ 문제점 : 우리 민족과 관련된 구체적 역사 사실을 세계 어디에나 존재하는 보편적인 사실과 연결지어 특수성을 부정하는 것
⑺ 조선 명칭의 기원을 중국의 태양 숭배 신화인 ‘탕곡부상십일신화’와 연결
① “열개의 태양이 하나씩 동쪽 탕곡이라는 계곡에서 목욕하고 부상나무 위의 가지로 올라가 하늘로 여행을 떠나 서쪽편에 도착하여 하루가 된다” : 『산혜경』
② 해가 뜨는 곳이라는 내용만을 근거로 아침을 의미하는 한자인 조(朝)가 명칭으로 사용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조선(朝鮮)과 이 신화를 연결
③ 탕곡 : 현재의 요동반도, 한반도와 연결지을 수 없다
ⓐ 『사기』 : 중국 동쪽인 현재 산동반도 일대 청주(靑州) 지역
ⓑ 『산혜경』 : 흑치(黑齒) 북쪽, 즉 산동 일대
④ 『사기집해』 (史記集解) : 습수(濕水), 열수(冽水), 산수(汕水) 등 세 강과 관련되 명칭
- 일출 지역이라는 현상보다 강의 합류처와 관련된 지리적 성격이 강한 명칭
⑻ 단군신화는 중국신화의 영향을 받았다 : 중국신화에 나타나는 ‘신성한 존재의 출현이 초인간적인 상황속에 전개된다’는 일반론에 바탕 - 단군신화는 중국문화의 반영
① 단군 관련 사실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 : 곰 숭배 신앙
② 중국신화와는 소재와 신화 구조 형태가 전혀 연결되지 않고 있다
③ 중국 민족과는 전혀 상관없는 한국의 신석기 문화를 담당한 고아시아족의 곰 숭배 신앙과 연결되는 내용
⑼ 기자동래설(箕子東來說) : 중국의 동북지역 확장을 설명할 때 가장 중요한 역사적 계기
① ‘중국 현인인 기자가 신하인 주 무왕이 은나라를 붕괴시키고 새롭게 왕이 되자 그를 섬길 수 없다하고는 조선으로 피난하였다’ - 은(殷) 멸망 시기 : 기원전 1122~1030경
② 『상서대전』(尙書大典)
ⓐ 기본 생각 : ‘중국이 가장 우월한 민족이다’
ⓑ 기자가 조선으로 갔다는 내용이 유일하게 실린 역사서
③ 한국 및 일본 학자에 의해 사실이 아니라고 판명
⑽ 동북(東北)이라는 용어
① 중국측 주장 : 동북 고민족이란 용어를 사용, 고대 종족이 동북 지역에서 하나의 동일 운명공동체로 유지 되었다
② 동북 : 현재 중국에서 ‘동북 방향에 위치한 지방’, 즉 현재의 흑룡강성, 길림성, 요령성을 함께 지칭하는 ‘동북 3성’
③ 현재 중국 행정 구획에 의한 명칭, 즉 하나의 동일 문화나 역사에 의해 포괄된 지역이 아니다
④ 현재의 동북아시아 개념의 동북과는 기준과 범위가 다른 지극히 중국적인 명칭
⑤ 중국의 정치적 포섭과 영유권이 전제된 목적성이 있는 명칭속에 계통과 문화가 다른 고대 종족을 ‘고민족’(古民族)이라고 하는 것은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과거에 그대로 투영한 것 - 중국의 패권주의적 역사 인식
⑾ 위만조선의 정치적 신속 문제 : 위만의 종족적 성격이 동이계(東夷系)임이 이미 확인
⑿ 한군현(한4군) 문제
① 한과의 정치·군사적 갈등속에 설치
② 위만조선 내부의 정변에 의한 한과의 정치적 타협으로 나타난 결과
③ 삼군이 20여 년만에 폐지되거나 중국 내륙으로 이동
ⓐ 고구려 등 토착 세력의 정치·군사적 성장에 의한 것
ⓑ 고조선~고구려로 연결되는 역사 계승성과 독자성을 반증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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