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주장 : 고구려 유민 중 중국인이 된 사람이 더 많으므로 고구려는 중국사다.
동북공정에서는 고구려 유민 중 상당수가 중국으로 들어가 한족(漢族)에 흡수되었기 때문에 고구려사는 중국사라고 주장한다. 고구려 유민 중 2만 8천여 호나 되는 사람들은 당에 의해 중국 내지(內地)로 강제 이주되었고 일부는 고구려 옛 땅에 남아 있다가 대조영(大祚榮)이 발해(渤海)를 건국하자 그 아래로 들어갔다. 일부 유민들은 당의 지배를 피해 돌궐(突厥)로 도망가거나 일본으로 건너갔다. 신라로 간 사람들도 많았다. 중국에서는 고구려 유민의 1/7만이 신라로 내려가 한국인의 선조가 되었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중국인이 되었으므로 고구려사는 중국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역사계승은 다수결로 결정되는 문제가 아니다. 신라로 내려온 사람들은 삼국 간 교류를 통해 쌓은 동류의식에 바탕하여 신라를 선택했고 고구려 부흥의지와 계승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고구려 유민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당과 신라사이에는 차이가 있었다. 당은 고구려 부흥을 막기 위해 유민들을 강제로 집단 이주시켰다. 반면 신라에서는 유민을 받아들여 보덕국을 세워주고 삼국을 통일했음을 강조했다. 이는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도 계승했다는 것을 표방한 것이다. 이러한 고구려 계승의식은 발해, 후삼국과 고려를 거쳐 오늘의 우리에게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 보덕국(報德國) : 674년 안승(安勝)이 전라북도 익산 지방에 세운 고구려 부흥국으로 683년에 폐지되었다.
* 고구려사의 한국사 귀속을 입증하는 결정적 요소
⑴ 고구려 부흥군의 활동
⑵ 고구려 부흥국인 보덕국의 존재
⑶ 삼국통일을 강조한 신라의 일통삼한의식(一統三韓意識)
⑷ 고구려의 계승국임을 표방한 발해, 후고구려, 고려의 존재
⑸ 고구려·백제·신라를 한국사로 정리한 역사서의 존재 : 『삼국사기』, 『삼국유사』, 『제왕운기』,
『동국이상국집』등의 기록은 고구려사가 한국사로 귀속·계승했음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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