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당쟁 원인
(1) 군자당(君子黨)과 소인당(小人黨)의 구분
① 정치집단으로서 군자는 군자끼리 모이고 소인은 소인끼리 모이므로 인간 자질에 따라 구분된다는 것
② 자기네가 속한 집단을 군자, 상대 집단을 소인으로
(2) 정치적 이권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
2. 당쟁은 관료사회뿐만 아니라 예비 관료집단인 사림에게로
(1) 선비는 스승이나 선배의 당색(黨色)에 따라 자신의 색깔을 규정 : 스승이 어느 당파이니 나도 그 당파에 속해야 하는 것이 의리를 지키는 것으로
(2) 서원
① 사림이 모이는 곳
② 당쟁 소굴
(3) 서원 출신의 선비들이 과거에 합격해 성균관에 들게 되면 다시 당색을
(4) 성균관 유생이 벼슬을 받으면 자연스레 특정 당파에 가담하는 것
3. 관료사회의 분위기 → 문중으로
(1)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져 평소에도 대화를 나누지도 않고, 심한 경우 길가에서 만나도 인사를 하지도 않았다
(2) 서로 혼맥(婚脈)을 끊었으며 조상이 당쟁에 연루되어 피해라도 입었으면 원수 사이
(3) 때로는 한 문중이라도 당색을 달리했으며 한 형제가 갈라지는 경우도
4. 가정생활에도 파급
(1) 의복(옷깃)
① 노론 : 길게
② 소론 : 짧게
(2) 호칭(며느리가 시아버지를 부르는 호칭)
① 노론 : 영감, 마님
② 남인, 소론 : 아버님, 어머님
(3) 제사의 격식과 절차, 제문의 문구도 달리
(4) 걸음걸이나 차림이나 말소리만 들어도 당색을 구분할 수 있을 지경
5. 당쟁에 대한 견해
(1) 파벌을 조성하고 분열을 가져와 국력을 끊임없이 소모했다
(2) 서로 감시하고 견제하여 붕당정치를 이룩했다
(3) 실학자 : 현실개혁을 도모하며 당쟁 피해를 끊임없이 제기
(4) 영조 : 당쟁을 가장 강력하게 타파하려 한 군주
① 당쟁으로 왕권이 약화되고 인재 등용의 방해를 받고 사회가 유리된다고 파악
② 당쟁이 정치를 지배하는 풍토에서는 임금은 한낱 조연에 불과하다고 생각
6. 영조, 탕평정책
(1) 탕평
① 왕도는 넓은 바다의 물결처럼 골고루 스며들어 치우침이 없음을 나타낸 용어
② 요체는 문벌이나 당파를 떠나 고른 인재등용 :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는 것
→ 벼슬자리는 문벌의 독점을 막고 지역차별도 함께 해소되는 결과가 초래될 가능성
③ 모든 기록에서 노론, 소론, 남인, 북인 따위 용어를 일절 쓰지 못하게 → 성향에 따라 준론(峻論)·완론(緩論), 탁류(濁流)·청류(淸流) 따위의 용어 사용
(2) 노론
① 독점적 지위를 오래 누린 파벌
② 탕평정책이 추진되었을 때 가장 큰 반대
③ 군자(선)와 소인(악)을 확실하게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
④ 탕평정책 : "색깔의 기본인 흑백과 맛의 기본인 함감(鹹甘·짠 맛과 단 맛)을 빼고 잡탕으로 만들었다"
⑤ 조직적으로 탕평정책에 반기 : 기득권을 계속 누리려는 술수
(3) 당파를 색깔로 비유하여 당색 또는 색목(色目) → 색깔을 없애는 것이 탕평의 지름길이었던 것
(4) 1772년, 탕평과라는 이름의 과거시험 : 11명의 급제자를
① 급제자의 답안지를 일일이 살펴보았다
② 실직을 임용할 때에도 문벌보다 지역출신을 안배하려
(5) 탕평비를 곳곳에 세우고 탕평채라는 음식을 만들어 먹게 할 정도로 강력한 의지를 천명
① 불완전하나마 상당한 성과
② 나머지 과제를 정조에게
7. 정조
(1) 신하들이 쓰고 있는 복건 만듦새가 당색에 따라 다름을 보고 놀랐다
(2) 채제공 정약용 등 남인들을 불러 복건의 만듦새를 노론의 것과 같게 만들어 쓰게
① 이들 남인의 복건이 통일되면 다른 남인들도 따를 것으로 판단 : 예상은 빗나갔다
② 심각성 인지
(3) 규장각 설치 : 당색과 문벌을 타파하고 능력에 따라 인재 등용 시도
(4) 초계문신(抄啓文臣, 문신의 자질향상) 제도 : 친위세력
(5) 남인을 정치의 전면에
① 강력한 도전을 연달아 받은 끝에 말기에는 문벌을 인정하는 수준으로 조정
② 탕평정책이 후퇴한 꼴
8. 안동 김씨, 여흥 민씨 따위 문벌정치 등장
(1) 붕당정치의 변종
(2) 독점적 권력을 누리고 모든 이권을 거머쥐어 정치를 파행으로
(3) 흥선대원군
① 왕권 강화를 위해 문벌과 당색을 해소하려 여러 조치 단행
② 새로운 세력으로 전주 이씨를 등장시킨 탓으로 결국 실패
9. 고종
(1) 노론계열인 여흥 민씨에게 의존하면서 늘 "나는 노론이다"라고 말했다
(2) 노론을 무시하고는 정치를 펼칠 수도 없었고 신변을 보장받을 수도 없었던 것
→ 노론계열이 주도하여 나라를 일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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