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설화

 (1) 그 나름대로 시대적 의미를 담고 있다

 (2) 온달설화 : 당시의 시대상황을 잘 반영한 내용으로 엮어져 있다


2. 온달

 (1) 평양 변두리의 산골에서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고 있는 청년

 (2) 《삼국사기》

  ① "겉 모습은 구부정하고 우스꽝스러웠지만 마음속은 환하게 밝았다"

  ② "집이 매우 가난하여 늘 음식을 구걸해다가 어머니를 봉양했다"

  ③ "찢어진 적삼과 해진 신발로 저자를 왕래하니 그때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바보 온달이라 했다" 

 

3. 평강공주

 (1) 어릴 적에 울보 : 부왕인 평강왕(평원왕의 오기[誤記])이 늘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는 농담

 (2) 16살이 되어 귀족인 상부 고씨에게 시집보내려 하자 “임금은 허언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고 온달과 혼인하게 해달라고 떼를 썼다

 (3) 부왕 : 평강공주를 궁중에서 쫓아냈다 
 (4) 산골에 사는 온달을 찾아가서 금팔찌를 팔아 마소를 사는 등 넉넉하게 살림살이를 꾸리고 말부리기와 활쏘기를 연습

 (5) 고구려에서는 3월3일 평양 교외에 있는 낙랑의 언덕에서 사냥대회를 열었는데 온달이 참여해 1등

 

4. 1등한 온달

 (1) 요동벌에서 벌어진 전쟁에 임금이 친정(親征)

 (2) 온달이 앞장서서 큰 전공

 (3) 임금

  ① 온달을 칭찬

  ② 큰 벼슬 수여

  ③ 예식을 갖추어 혼례를 올리게 : 정식 사위로 맞이했다

   → 평민으로서 최고의 신분상승을 이룩한 것 

5. 고구려는 독특한 귀족사회 형성

 (1) 초기, 5부 체제

  ① 왕권이 심하게 제약

  ② 계루부 : 왕위 계승권 보유

  ③ 나머지 4부

   - 왕을 추대하기도 왕을 내쫓기도 할 수 있는 권한 보유

   - 각기 군사를 보유하고 별도로 조세 수취
 (2) 새로운 귀족사회 형성

  ① 왕실의 왕권강화 노력은 쉴 새 없이 전개

  ② 광개토태왕, 장수왕 : 5부 체제를 무너뜨리고 강력한 왕권을 회복한 군주

  ③ 귀족들끼리의 격렬한 권력쟁탈전 : 6세기 무렵, 귀족사회 재편

   - 평양 천도 후에 옛 도성에 사는 국내성파와 새 도성에 사는 평양파로 갈라진 것

   - 권력을 잡기 위해 서로 심한 갈등 
  ④ 평민 : 조세를 무는 따위의 국가의무를 지니면서도 높은 벼슬을 얻을 수 없었다

  ⑤ 왕실 : 귀족들과 혼인

  ⑥ 귀족 : 독점적 특권을 누리기 위해 자기네들끼리 혼인을 하여 끈끈한 혈연관계 유지


6. 평강왕(평원왕의 오기[誤記])대 고구려와 온달 
 (1) 국력이 쇠퇴해지기 시작

  ① 한강 주변과 죽령 남쪽 영역 상실

  ② 요동지방도 중국에서 일어난 후주(後周)가 지경을 침범

  ③ 고토 회복의 의지는 강렬

 (2) 귀족들의 갈등과 평민들의 불만으로 일체감 불형성 : 귀족을 누르고 평민을 등장시켜야 하는 정략이 요구

  ① 방법의 하나가 바로 온달 등장 : (증거) 아무리 화가 난다고 공주를 산속으로 쫓아낼 수 있겠는가?
  ② 진중하고 성실하며 평민이요 무인(武人)인 온달을 사위감으로 미리 찍고 그 공로를 인정해 대형(大兄)이라는 높은 관직 수여

  ③ 몇 가지 방법을 동원해 사위로 공식적으로 공포한 것이 아니겠는가?

   → 귀족 : 치밀한 구조에 맞설 수 없었을 것

 

7. 영양왕대 온달 
 (1) 계속적인 국력 쇠퇴

 (2) 지배세력의 한 사람인 온달

  ① 자청해서 남쪽의 고토를 회복하겠다고 나섰다

  ② 이 임무를 맡은 것은 귀족 출신 장수의 소외를 의미

  ③ 죽령을 넘어 충주 단양 일대를 석권

  ④ 한강 중류의 아차산에서도 정복활동 : 전장 일선에서 사망 
 (3) 영웅으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

  ① 평강공주 다시 등장 : 평강공주가 와서 관을 어루만지고서야 관이 움직였다

  ② 평민 또는 민중을 더욱 감동

   → 민중 : 온달설화를 만들어내고 널리 퍼뜨렸던 것

 

 ※ 고구려 3대 장수 온달, 을지문덕, 연개소문 중 온달만이 평민출신이고 왕의 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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