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당시 곽재우의 사촌 동생인 곽재훈(郭再勳)에게는 결(潔), 청(淸), 형(泂), 호(浩), 네아들이 있었는데 임진왜란때 편찮으신 아버지를 두고 피난갈 수 없어 유가산(瑜伽山)에 있는 동굴에 숨어 있었다. 왜군이 동굴 앞을 지나 가던 중 해소병이 있던 아버지가 기침을 하여 동굴안에 사람이 있는 것을 알게되었다. 맏아들은 자신이 먼저 나가서 아버지와 동생을 살리고 대신 죽었다. 이런 일이 네 번 거듭되었고 왜장이 굴 안을 확인하니 한 노인이 왜병에게 아들 넷을 잃을 사연을 말하였다. 이에 왜군도 슬퍼하여 노인 등에 ‘네 효자의 아버지’(四孝子之父)라고 쓰고 그 누구도 노인을 다치지 않게 보호하라고 하면서 풀어주었다.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지자 선조는 정려(旌閭)를 내렸다. 마을 사람들도 네 아들과 아버지가 피신했던 곳에 ‘사효자굴’이라 쓴 비석을 세워 효성을 기념하였다.(유가면 양리)
※ 정려 : 충신, 효자, 열녀 등에 대해 그들이 살던 고을에 이를 표창하기 위해 붉은 문(旌門)을 세워 기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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