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80년 5월 24일 오후 8시 13분, 주한 일본대사관이 자국 외무성에 보고한 정보보고 문서 : 1980년 5월 24일 전두환, 편집국장단과 비공개 간담회 - "김일성은 영리하게 2000~3000명의 비정규군에 의한 전쟁을 기획하고 있다"

 (1) '5·18 북한군 개입설'의 원조격으로 추정

 (2) 새롭게 확인된 전두환의 80년 5월 24일 발언 전에는 그 누구도 구체적으로 북한군 병력 숫자까지 거론하며 ‘북한군 침투설’을 언급한 적이 없었다

 (3) 전두환이 광주항쟁 유혈진압계획을 직접 언급한 기록도 포함

  ① ‘광주항쟁에 참여한 시민들이 무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이틀 후에 강제진압 할 것이다’

  ② 실제 계엄군은 전두환이 예고한 바로 그 날(5월 26일) 광주항쟁을 이끈 시민지휘부가 있던 전남도청을 유혈 진압

 

2. 1980년 5월 당시 광주항쟁과 북한의 관계를 언급한 언론보도

 (1)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기 직전인 1980년 5월 16일 신현확 당시 국무총리 담화 : "새삼 말씀드릴 필요도 없이 우리 사회가 혼란에 빠져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면 틈만 있으면 한반도를 무력 등 온갖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라도 적화통일하겠다는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는 북한공산집단이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2) 1980년 5월 24일 글라이스틴 미국 대사 등 주한 미국 대사관 고위 외교관들의 발언 : "카터행정부는 최근의 한국사태를 중요시하고 있다. 북한이 광주 등 한국사태를 악용해서 자행할지도 모를 어떠한 무력도발에 대해서도 분쇄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3) 전남도청 유혈진압 전날인 1980년 5월 26일 최규하 대통령의 특별방송 : "그 원인이야 어쨋든 이러한 상태가 오래 계속되면 누가 잘잘못을 가릴 겨를도 없이 우리 대한민국의 국가안위에 관련되는 중대사태가 될 위험성마저 있다. 우리가 항상 잊어서는 안 될 일은 우리들의 대결상황을 북한 공산집단이 악용하고자 할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다."

 

 ※ 모두 북한군의 개입 가능성을 걱정하는 수준일 뿐, 전두환이 언론사 편집국장들에게 말한 것처럼 구체적인 병력 숫자, ‘전쟁 기획’ 등의 정보를 담은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3. 1980년 5월 당시 광주항쟁과 북한의 관계를 언급한 여러 발언

 (1) 1980년 5월 13일, 합동통신이 이케다(일본대사관 직원)에게 연락 : 같은 날 낮에 신(현확) 국무총리는 각 보도기관 편집장과의 오프더레코드 석상에서 (5월) 12일 한국내에 유포된 '북한의 제 8군 특수군단에 이상한 움직임이 있다'

 (2) 1980년 5월) 22일, OOO 등은 마에다 (주한 일본) 대사에게 한 이야기 : '북한의 특수군단 1개 소대가 이미 잠입해 한국군으로 위장한다든지, (북한이 광주) 사태를 한층 더 혼란스럽게 하려고 계획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3) 1980년 5월) 23일 오후 대스파이대책실무위원회 회의 개최 : "최근 광주 소요사태 각종대책과 북한특수부대의 후방침투 대비 대책, 대남전략분실 비정규전 대비 대책 강화, 효율적 대간첩작전 법안시행 수속 검토..."

 

 ※ 이것들 역시 시중의 소문을 전하거나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자는 취지일 뿐, 전두환처럼 '비정규군 2000~3000명', '김일성의 전쟁 기획' 등 구체적인 정보를 담은 내용은 아니었다.

 

※ 비보도를 전제로 한 것이었지만 전두환의 입에서 시작된 ‘북한 비정규군 전쟁 기획설’ → 기자를 거쳐 일본에 전달 → ‘해상을 통한 공중 투하’, ‘게릴라부대 침투’ 등으로 확대재생산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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