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미 육군과 조선인(한국인) 사이의 오해이고 이 오해는 아직 그 연장선상에 있다’

1. 1945년 9월 7일, 맥아더 태평양 사령관의 ‘조선주민에 포고함’ 포고령 제 1 호 제 1 조 : “항복문서의 조항에 의거해 본관 휘하의 군대는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지역을 점령함”

2. 1945년 9월 7일, 포고령 제 2 호 : “점령군의 보존을 도모하고 ‘점령지역’의 공중치안,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점령군의 목적이며 이를 위반하거나 적대 행위를 하는 자는 사형 또는 타 형벌에 처한다”

※ 미군 스스로 자신을 점령군(occuppying force)으로, 자신이 지배할 곳을 점령지(occupied area)로 불렀다

3. 미국에 대한 조선 사람(한국인)의 오해, 미국 실상은?
 (1) 해방 직전 몇 년 동안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승인 요청을 지속적으로 거부
 (2) 조선의 즉각적인 독립을 지속적으로 반대
 (3) 개항 이후 늘 조선보다는 일본을 중요시
  → 미군을 점령군이 아니라 해방군으로 생각 : 미군 스스로는 점령군이라고 생각, 그렇게 공포

 

4. 1943년 카이로회담 “적당한 시기에(In Due Course) 독립시키겠다”
 (1) 즉각적인 독립의 불가함을 선언한 것
 (2) 이를 ‘가능한 한 빠른 시일에’ 혹은 ‘즉시’ 독립을 시킨다는 뜻으로 오해 : 좌우 구분없이 사실에 기반한 자기 확신이 아니라 희망에 매달린 확증 편향

5. 1944년 5월 22일, 미국의 대외관계심의위(Council on Foreign Relations)의 한국 정책보고서 ‘The Problem of Constituting an Independent Political Regime in Korea’(한국의 독립 정치 체제 구축 문제)
 (1) “한국에 어떤 형태의 독립정부도 세워져서는 안 되며, 한반도는 전후 일본 관리의 목적을 위해 군사지대화시켜야 한다”
 (2) 점령군 구성
  ① 한 나라의 단독 점령은 연합국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불가능
  ② 연합국 군대의 공동 지배는 연합국 간의 협조체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려움이 예상
  ③ 가장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것은 두 나라에 의한 분할 점령 : 미국 국익이나 조선인의 저항을 최소화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

 

6. 1945년 2월 얄타 회담 : 미국과 소련에 의한 남과 북 분할 점령 의지를 명확하게 선언

7. 남쪽과 북쪽에 들어온 미군도 소련군도 ‘점령군’
 (1) 조선의 즉각적인 독립보다는 미국과 소련에 의한 일정 기간의 군사적 지배를 합의하고 들어왔다 : 무엇이라 부르든 본질 차이는 없다.
 (2) 점령 뒤 군대 성격이 점령군에서 주둔군으로의 전환했다는 것(미국)과 점령군에서 군사자문단으로 변환했다는 것(소련) 사이에도 큰 차이는 없다.
  ① 미국 : 625전쟁을 겪으며 주둔을 장기화해 현재에
  ② 소련 : 중국 등 경쟁국 등장으로 군사적 영향을 유보
  ③ 대한민국 : 전시에 대비해 작전권 포기
  ④ 북한 : 전쟁에 대비해 전시 체제 유지

⇉ 인정해야 할 사실 : 미군과 소련군은 점령군이었고 그들 역시 인정하는 사실이고, 당시 모든 문서에 표기된 역사적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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