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계

 ⑴ 성 : 이(李)씨 → 견(甄)씨

 ⑵ 아버지 : 아자개(阿慈介)

  ① 상주 가은현(加恩縣 : 현재 문경)의 농민출신으로 뒤에 장군이 되었다

  ② 이비가기(李碑家記) : 진흥왕 후손 원선(元善)이 아자개라 했는데 확인하기 어렵다.

 ⑶ 어머니 성씨는 확실하지 않다.

 ⑷ 두 부인을 두었는데, 상원부인(上院夫人)과 남원부인(南院夫人)으로 전해질 뿐이다.

 ⑸ 견훤은 장자이며, 동생으로 능애(能哀), 용개(龍蓋), 보개(寶蓋), 소개(小蓋)와 누이 대주도금(大主刀金)이 있었다.


2. 견훤 설화

 ⑴ 『삼국유사』후백제 견훤조 : 광주 북촌에 사는 한 부자에게 아름다운 딸이 하나 있었다. 어느 날 딸은 밤마다 보랏빛 옷을 입은 남자가 나타나 자고 간다는 사실을 아버지에게 고했다. 아버지는 딸에게 그 사나이의 옷자락에 긴 실이 달린 바늘을 꽂아 두라고 일렀다. 딸은 아버지의 말대로 하여 이튿날 아침에 그 실을 따라가 보니 북쪽 담 아래실이 있고 바늘은 큰 지렁이에 꽂혀 있었다. 딸이 잉태하여 한 남자 아이를 낳으니 나이 15세에 이르러 스스로 견훤이라 칭했으며 경복원년에 일어나 완산군(지금의 전주)에 도읍했다. 이때 신라는 진성여왕(眞聖女王) 6년, 당(唐)은 소종(昭宗) 경복(景福) 1년이었다.

 ⑵ 견훤 어머니 가문이 광주 지역의 호족이었을 것으로 추측


3. 후백제(後百濟) 건국

 ⑴ 892년(진성왕 6) 무진주(武珍州 : 지금의 광주(光州))에서 나라 건국

 ⑵ 900년(효공왕 4)에 완산주(完山州 : 지금의 전주)로 도읍을 옮겨 나라 이름을 후백제라 하고 백제 부흥과 신라 타도를 표방


4. 패망

 ⑴ 930년 고창(古昌 : 지금의 안동)의 병산에서 고려군에게 패해서 세력 위축

 ⑵ 열세 속에서 견훤이 고려에 대해 타협적인 자세를 보이자 아들 신검(神劍) 등이 반발

 ⑶ 왕위 계승을 둘러싼 내분으로 이어져 견훤이 금산사(金山寺 : 지금의 김제에 소재)에 갇혔다가 고려로 망명

 ⑷ 936년에 신검이 일선군 일리천(一利川)에서 고려군에게 패배해서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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