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여의 왕


『삼국사기』<동명성왕조>,『삼국유사』<동부여조>, <고구려조> 그리고 이규보(李奎報)의 『동명왕편』(東明王篇)에 전한다.


늙도록 자식이 없었던 부여왕 해부루(解夫婁)는 산천에 제사를 드리며 후사(後嗣)를 구하러 다녔다. 어느날, 곤연(鯤淵)이라는 연못가의 큰 돌 밑에서 온몸이 금빛으로 빛나고 개구리모양을 한 옥동자를 발견하고 하늘이 주신 자식이라 생각하여 데리고 가서 키웠다. 금와라는 이름은 바로 금빛나는 개구리 모양을 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금와는 곧 해부루의 태자(太子)가 되었고, 해부루가 죽은 뒤 부여왕이 되었다. 뒤에 태백산 남쪽 우발수(優渤水)에서 하백(河伯)에게서 쫓겨난 딸 유화(柳花)를 만나 궁중으로 데려와 깊숙한 방에 가두었다. 그런데 유화는 내리쬐는 햇빛을 받고 잉태하여 알을 낳았는데, 그 알에서 주몽(朱蒙)이 나왔다고 전한다. 그의 일곱 아들들이 주몽을 시기하여 처치할 것을 건의했지만, 금와는 듣지 않고 주몽에게 말을 기르게 하여 그 뜻을 시험했다. 그 뒤 주몽이 달아나자 군대를 파견하여 추적했지만 잡지 못했다. 주몽이 떠난 후, 24년에 유화가 죽자 태후의 예로서 장례를 치러주었다. 그의 사후 왕위는 대소(帶素)에 의해 계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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