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조선 전기까지 경주, 상주 등이 지방 행정의 중심지 : 감영(監營) 설치
② 1394년(태종 3), 대구현에는 종래의 하빈현에 수성현, 해안현이 새롭게 포함되고 대구현의 속현이었던 화원현이 성주목에 속함
③ 수성현, 해안현 : 1395년에 경주로 옮겨졌다가 1414년(태종 1)에 대구에 속함
④ 1419년(세종 1), 호수(戶數)가 1300호가 되어 대구군(大丘郡)으로 승격
⑤ 1466년(세조 12), 대구도호부(大丘都護府)로 승격
⑥ 고을 격(邑格)이 승격된 이유
 ⓐ 인구 증가 및 이에 따른 조세 수입 증가
 ⓑ 진관제도(鎭管制度) 확립에 따라 대구진이 성립되는 등 지리 군사적 중요성 증대
⑦ 대구 본읍이나 속현의 영역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⑧ 이 시기의 대구
 ⓐ 밭농사 → 논농사
 ⓑ 대구 주변 평야지대에서 농업 등 산업이 발전
 ⓒ 남는 생산물을 교환하기 위한 시장 확대
 ⓓ 교통이 편리하여 인구 집중
⑨ 임진왜란을 계기로 군사작전과 지리적인 측면에서 차지하는 위치 중요성이 재인식
 ⓐ 임진왜란 초기 왜군의 후방기지, 병참 보급기지
 ⓑ 조명연합군(朝明聯合軍)의 왜군 격퇴를 위한 전초기지
 ⓒ 왜군의 전라도 충청도 진입 저지를 위한 방어선 역할
⑩ ‘대구에 감영(監營)을 설치하자’
 ⓐ 군사적 요충지로 중요성이 부각된 결과
 ⓑ 경상도 한가운데 위치 : 경상도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좋은 지리적 조건
 ⓒ 지역내 풍부한 생산물로 감영 경비 조달에 유리하고 인근 지역의 생산물이 집결될 수 있다는 경제적인 이점이 고려된 결과
⑪ 1601년(선조 34), 감영 설치 : 이후 설치, 폐지 반복
 ⓐ 경산현(慶山縣), 하양현(河陽縣), 화원현(花園縣) 등을 내속(來屬) : 감영 경비 조달 목적 → 대구본읍, 수성현, 하빈현, 해안현, 경산현, 하양현, 와원현을 포괄하는 큰 고을
 ⓑ 종2품 경상감사(관찰사) : 대구대도호부사 겸임
 ⓒ 대구대도호부 일반 행정 : 종5품 판관(判官)이 관할
⑫ 1607년(선조 40) 5월
 ⓐ 하양현, 경산현 → 대구부에서 분리 독립, 독자적인 군현
 ⓑ 화원현 → 성주목 관할
⑬ 1684년(숙종 10) 3월, 감영 재설치
 ⓐ 성주목에 속했던 화원 8개 방(坊)과 밀양목 소속의 풍각 4개 면 → 대구부
 ⓑ 대구본부, 옛 수성현, 하빈현, 해안현, 화원현, 풍각현 등 5현 소속의 34면 포괄
 ⓒ 경상도의 정치 경제 군사 교통의 중심지
⑭ 1789년(정조 13) <호구총수>(戶口總數)
 ⓐ 13413가구, 61477명
 ⓑ 각종 관아와 시장 때문에 지금의 중구에 해당하는 동상면, 서상면에 인구 집중 : 각각 6473명, 7411명
⑮ 1690년(숙종 16), 양반호 9.2% → 1783년(정조 7) 37.5% → 1858년(철종 9) 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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