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건국 시조.


‘고구려 건국신화’ 또는 동명왕의 이름을 따 ‘주몽신화’(朱蒙神話)라고도 한다. 동명왕에 관한 내용은 국내 문헌에서는 『광개토왕릉비문』서두, 『삼국사기』, 『삼국유사』, 『동국이상국집』의 〈동명왕편〉, 『제왕운기』, 『세종실록』 지리지, 『동국여지승람』, 『청장관전서』등에 나타나고 있으며, 중국 문헌 중에는 왕충의 『논형』(論衡), 『양서』(梁書), 『위서』(魏書), 『주서』(周書), 『수사』(隋史), 『북사』(北史), 『통전』(通典) 등에도 전하는데, 자료에 따라 내용 차이가 있다. 주몽신화(=동명왕 신화)라 하면 흔히 『동국이상국집』의 〈동명왕편〉을 제일로 치는데, 내용면에서 이것이 가장 뛰어나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삼국유사』〈동명왕편〉 등에 공통되는 내용을 추출하여, 이 신화의 줄거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주몽의 아버지는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였는데, 성북 청하에서 놀고 있는 하백(강물의 신)의 딸 유화와 인연을 맺고 하늘로 돌아간다. 이 일로 하여 유화는 하백에게 쫓겨나 우발수에 있다가 동부여왕 금와왕에게 구출되고, 후에 해[日]에 잉태되어 1개의 알을 낳는데 이것이 주몽이다. 알은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마구간과 깊은 산에 버려지지만 짐승들의 보호를 받고 태어나 어머니에게서 양육된다. 어려서부터 활을 잘 쏘아 주몽이라 불렸는데, 부여 왕의 태자들이 그의 능력을 시기하여 죽이려 하자 유화는 주몽에게 남쪽으로 가 뜻있는 일을 하라고 한다. 주몽은 계략을 써서 왕실의 준마를 얻고, 세 현우(賢友, 오이(烏伊), 마리(摩離), 협보(陜父))와 함께 길을 떠나 엄체에 이르렀을 때, 그를 도우러 나타난 물고기와 자라들이 만든 다리를 밟고 강을 건너 추격병을 피한다. 주몽은 유화가 보낸 보리씨를 비둘기로부터 받고, 남쪽으로 내려와 경개가 좋은 곳에 왕도를 정하고 나라이름을 고구려라 한다. 비류국왕 송양과의 언변 및 활쏘기 시합에서 크게 이겨 송양의 영토를 빼앗고, 성곽과 궁실을 크게 짓는다. 재위 19년에는 부여에서 온 아들 유리와 부러진 두 조각의 칼을 하나로 맞춰본 뒤 그를 자식으로 인정하고 태자로 삼는다. 죽어 용산에 장사되었는데, 시호를 동명성왕이라 했다.


※ 『삼국유사』 <북부여조>에서는 북부여의 천제를 해모수라 하고 그 아들을 해부루(解扶婁)라고 한 뒤, 해부루가 상제(上帝)의 명을 따라 동부여로 옮겨가고 동명이 북부여를 이어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 고구려 건국신화를 전하는 가장 오래된 자료인 <광개토왕릉비>, 『위서』(魏書)에는 해모수가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원래 북부여의 시조로 전승되어 오던 것을 5세기경 고구려가 부여를 병합한 뒤 부여인을 무마하기 위하여 고구려의 건국신화와 결합, 재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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