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팔공산 : 후삼국 시대 후백제의 견훤(甄萱)과 고려의 왕건(王建)이 ‘동수대회전’(桐藪大會戰, 공산전투)이라고 불리는 일대 접전을 벌였던 곳
② 927년(태조 10), 견훤
 ⓐ 고사갈이성(高思葛伊城, 문경) 공격
 ⓑ 고울부(高鬱府, 영천)을 거쳐 경주 부근까지 육박

 ⓒ 신라 경애왕(景哀王, 924~927 재위) : 고려에 구원을 요청, 견훤이 먼저 경주를 침략
 ⓓ 포석정에서 경애왕을 자결하게 하고 김부(金傅) → 경순왕(敬順王, 927~935 재위)

 ⓔ 왕의 아우 효렴(孝廉)과 재상(宰相) 영경(英景), 수공업자, 귀족 자녀 등을 인질로 
 ⓕ 보물, 무기 등 약탈
④ 고려 왕건
 ⓐ 은해사(銀海寺) 입구(태조지(太祖旨))에서 후백제 군대에게 패퇴(敗退)
 ⓑ 현재의 서변천과 금호강이 합류하는 지점인 살내(전탄(箭灘))를 경계로 양군이 대치
 ⓒ 신숭겸(申崇謙), 김락(金樂)의 증원군과 합세
 ⓓ 왕산(王山)아래 해안현 미리사(美理寺) 앞까지 진출
 ⓔ 동화사와 파계사로 가는 갈림길이 시작되는 ‘파군재’에서 크게 패배
 ⓕ 신숭겸, 김락 등 군사 대부분이 전사
⑤ 신숭겸 : 왕건과 옷을 바꾸어 입고 후백제군을 자신에게 유인하여 왕건이 안전하게 피신하도록 도왔다.
⑥ 고려 패배 원인
 ⓐ 후백제군 : 경주를 함락시켜 사기가 높았고 그 과정에서 확보한 군량이 풍부
 ⓑ 고려군 : 개경에서 팔공산까지 내려오느라 군사들이 지치고 군량조차 부족
 ⓒ 대구 : 후백제의 영향아래에 있어 전쟁을 수행하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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