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프 예비회담: 1918.11.30.
2. 파리 강화회의(1919.1.18).
⑴ 표면상 戰後(전후)처리와 평화수립이 원칙: 일부만 실현.
① 미국 윌슨의 ‘14개조’제시(1918).
② 제국주의를 지양.
③ 자유와 자치에 입각한 새로운 평화질서를 수립.
⑵ 실제 강화회의 내용을 좌우한 것은 영국프랑스를 비롯한 戰勝國(전승국)의 현실관계와 그들이 전쟁중에 맺은 비밀조약.
⑶ 패전국에 대한 철저한 응징.
3. 파리 강화조약 체결.
⑴ 독일: Versailles 조약(베르사이유 조약, 1919.6.28).
① 세계대전의 책임이 전적으로 독일에 있다고 규정하고 일방적으로 강요한 것.
② 모든 해외 식민지를 상실.
③ 알사스, 로렌지방: 프랑스에 반환.
④ 군비 축소: 무기생산 금지.
⑤ 막대한 배상금.
⑵ 오스트리아.
① St. Germain 조약(1919.9.10).
② 오스트리아 →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로 분열.
⑶ 헝가리.
① Trianan 조약(1920.6.4)
② 헝가리 독립.
⑷ 터어키: Sévres 조약(1920.8.10).
⑸ 불가리아: Neuilly 조약(1919.11.27).
⑹ 세르비아 → 유고슬로비아.
⑺ 투르크제국 붕괴.
⑻ 핀란드, 에스토니아, 폴란드가 독립.
4. Versailles 체제(베르사이유 체제).
⑴ 의의.
① 파리 강화회의로 인해 성립한 새로운 국제 질서.
② 2차대전 발발로 비난받은 체제.
⑵ 특성.
① 이상주의적 측면.
Ⓐ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 세계 최초의 세계적 규모의 평화기구.
Ⓑ 민족자결주의 주창: 일부만이 실현되었다.
② 현실적인 측면: 제국주의적인 戰後(전후)처리.
Ⓐ 세력균형주의: 프랑스가 독일을 고립시키기 위해 주변국가들과 강화.
Ⓑ 가혹한 강화조약.
⑶ 체제붕괴 요인.
① 조약내용 자체에서 보다 戰後(전후) 20년간 유럽사와 세계사의 흐름에서 구해야 한다.
② 전승국들의 체제유지에 대한 소극적이고 미온적인 자세.
③ 전체주의 국가들의 침략적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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