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국

 (1) 고구려 기원 : 예맥족이나 부여족

 (2) 중국 동북지방의 소수 민족

  → 한국사와의 연관성을 완전히 단절할 수 없게 된다

 (3) 고구려 선조 : 중국 은(殷)나라에서 분리

  ① 주나라 역사서, 《일주서》<逸周書)> 왕회편(王會篇) : 고이(高夷)를 고구려 선인으로 설정 → 서주대(西周代)부터 중국에 복속

  ② 왕회편, 양이(良夷)는 고조선, 예인(穢人)을 부여·옥저·동예, 발인(發人)을 요동 지역 주민의 선인으로 설정 → 각기 별개의 족속으로 파악

   → 고구려 선조 : 고조선이나 부여와 아무 관련도 없게 된다

  (4) 고이(高夷) : 중국 전설상의 인물인 전욱(頊·중국 전설 삼황오제의 하나) 고양씨(高陽氏)의 후예 → 고구려 왕실이 고양씨의 후예를 자처해 '고(高)'를 성씨로 삼았다고 주장

 (5) 신석기 후기 문화, 홍산문화(紅山文化)가 융성했던 요서(遼西) 일대

  ① 전욱 고양씨 족단의 본거지

  ② 이들이 중원 대륙으로 옮겨갈 무렵 일부가 동방으로 이주해 고구려 선인이 됐다

  ③ 주요 논거 : 홍산문화의 적석묘와 고구려 초기 적석묘의 유사성

 

2.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은 "영토 지상주의 역사관"

 (1) 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화이론(華夷論)에 입각해 역사를 인식

  ① 중원 대륙의 왕조만 문명화한 나라 곧 중화국(中華國)이고, 주변국은 미개한 이적(夷狄)의 나라

  ② 중국사의 범주 : 중원 왕조에 국한되며 주변 민족은 제외

 (2) 현재 중국 : 한족(漢族) 등 55개 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

  ① 정부 수립과 더불어 '중국은 현재뿐 아니라 자고 이래로 통일적 다민족 국가였다'는 논리 확립

  ② 중국의 모든 민족 나아가 중국 영토 안에서 이루어진 역사를 모두 중국사로 설정

  ③ 전통사관에 따르면 중국사에서 제외될 무수한 소수민족의 역사가 중국 영토에서 이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중국사로 둔갑

 

 ※ 중국은 80년대까지도 고구려사를 한국사로 파악

 

3. 중국, 《일주서》<逸周書)> 왕회편(王會篇)

 (1) 고구려인은 중국 화하족(華夏族·고대 한족)의 후예라는 핵심적인 근거

 (2) 문제점

  ① BC 10세기 서주의 도성 건설을 기념해 여러 제후와 주변의 이족(夷族)이 모인 장면이 등장

  ② 등장하는 무수한 족속이 대부분 실체를 알 수 없는 것

  ③ 고이가 고구려 선인이라고 볼 근거도 없는 것

 

4. 중국 : 고이에 고구려의 '고(高)'자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부각

 (1) 고구려는 본래 '구려(句驪)'로 불리다가 나중에 '고(高)'자가 더해져 고구려로

 (2) 고이와 고구려는 아무 연관성이 없는 것

  → 전욱 고양씨가 고이의 선인이라는 주장도 논거가 전혀 없다

 (3) 전욱 고양씨는 전설상의 인물로 실존 여부조차 불명확

  ① 실존했다 하더라도 고이보다 1,500여 년 앞선 BC 2500년께 활동한 것으로 추정

  ② 직접적인 계승 관계를 설정할 수 없다

 (4) 요서 일대의 홍산문화가 전욱 고양씨 족단의 산물 : 고구려 선조도 여기서 갈라졌다

  ① 홍산문화 적석묘 : BC 3000년께 만들어졌다

  ② 고구려 적석묘 : BC 3∼2세기에 조영, 즉 무려 3,000년 가까운 시간차가 존재하므로 양자를 연결해줄 유적이 없는 한 역시 연관을 말하기 어렵다

 

  ※ 고구려 선조가 중국 화하족의 후예라는 중국 학자의 견해는 논거가 전혀 없는 것

 

5. 한민족의 조상 예맥족이 고구려의 선조

 (1) 예맥족

  ① 신석기시대 이후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서 농경생활을 하던 족속

  ② 본래 '예(穢, 濊)'로 불리다가 전한대부터 '예맥(穢貊, 濊貊)'으로 불렸다

  ③ 이들 가운데 요동, 현재의 북한 서부지역의 주민집단이 청동기문화를 바탕으로 가장 빨리 성장해 고조선을 건국

  ④ 그 뒤를 이어 송화강 유역의 주민 집단이 부여를 건국

 (2) 고구려 선조인 압록강 중류의 주민집단

  ① 독자적인 문화를 이루지 못하고 예맥족의 일부로

  ② BC 3∼2세기경 철제농기구를 사용 : 농경 발전

  ③ 적석묘라는 독특한 묘제를 만들며 독자 문화를 형성하기 시작

  ④ 주변의 예맥족과 구별되는 명칭으로 불리기 시작

  ⑤ BC 2세기 후반에는 '구려(句麗)'로 불리다가 이것이 고구려라는 국가명으로 정착되자 '맥(貊)'으로

   → 고구려 선조 : 고조선이나 부여의 선조처럼 예맥족에서 분화

 

6. 예, 맥, 예맥 관계

 (1) 예맥족을 부르던 이름은 시대에 따라 변화

 (2) 선진(先秦) 시기

  ① 예(穢) : 요하(遼河·중국 동북지방 남쪽의 강) 동쪽 주민

  ② 맥(貊) : 중국 북방 민족

 (3) 진한(秦漢) 이후 : 맥의 용례가 확장, 예와 결합 → 요하 동쪽의 주민 집단을 예맥이라고 통틀어 부르기 시작

  → 예맥은 예족과 맥족이 결합한 것이 아니라 종래부터 이 지역에 거주하던 예족의 이름을 확장한 것

 

  ※ 중국 북방의 맥족과는 아무 관계 없다

  ※ 고구려 선조 : 요하 동쪽에 거주하던 예족에서 갈라져 나온 것

  ※ 한민족 = 북쪽의 예맥족(穢貊族) + 남쪽의 한족(韓族)

 

7. "고구려" 의미

 (1) '구려(句麗)'에서 유래

 (2) '高'(고)라는 미칭이 첨가되어 국호로

 (3) 구려 : 계곡에 자리잡은 마을이나 성곽을 뜻하는 홀(忽)·구루(溝婁)와 같은 용어

 (4) 고구려 발상지인 압록강 중류 일대의 자연환경과 고구려인의 삶의 모습을 잘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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