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신체제

 (1) 1972년에 선포

 (2) 박정희 대통령의 종신집권, 권위주의적 억압책 강화, 중화학공업화 정책과 이를 위한 사회적 동원이 결합한 것

 (3) 사회를 준전시(準戰時) 상황처럼 통제 : 주로 “안보 위기”를 근거로 들어 권위주의적 억압을 정당화

  ① 1971년 7월, 헨리키신저의 베이징 방문 : 타이완의 중화민국에 대한 미국 지원을 종결

  ② 닉슨 독트린 : 베트남전에서 승리없이 철수하겠다는 신호를 보내 사이공 정권을 위태롭게

 (4) 국내상황   
  ① 극단적인 저임금 노동에 기반을 둔 급속한 수출주도 경제성장 전략의 모순이 터지기 시작

  ② 1970년 전태일의 분신 : 많은 지식인, 종교인, 학생들의 양심을 자극

  ③ 1971년 대통령 선거

   - 김대중에게 겨우 94만여 표 차이로 이겼는데 대규모 부정 선거 운동을 감안하면 사실상 박정희가 진 것

   - 선거 운동 자금 : 국가 예산의 10% + 미국 정유자본(걸프, 칼텍스)이 제공한 자금(7백만 달러)
  ④ 1974년 긴급조치 9호를 선포 : 민주화 투쟁은 점점 강경화

  ⑤ 1979년 YH 여성노동자의 투쟁중 여성노동자 김경숙의 죽음 : 부마항쟁의 한 배경

 

2. '개발독재' 모순

 (1) 많은 농민은 박정희식 경제성장 정책을 가난에서 벗어날 유일한 기회로 생각

 (2) 높은 경제성장률에 비해 비인간적인 노동 규율과 저임금 장시간 노동 강요

 (3) '선성장 후분배' : 경제성장의 과실도 균등하게 배분되지 않았다

 (4) 제조업 노동자의 실질임금

   ① 1970년 평화시장 여공<1일 14시간 노동> : 일당 70원으로 겨우 커피 1잔값

   ② 9년이 지난 1979년 YH 농성 여공의 일당 수준도 위와 비슷 

 

3. 경제 위기
 (1) 1976년, 14.1% 성장

 (2) 1978년, 9.7% 성장

 (3)  1979년(오일쇼크), 6.5%

 (4) 1979년, 전기요금 35% 인상

 (5) 1979년, 물가 22% 상승

 (6) 대량 해고와 실업 증가
 (7) 중공업 주도 성장 정책

  ① 1975~77년 섬유산업에 대한 은행대출이 전체의 40%에서 절반으로 축소

  ② 노동집약적인 중소기업이 몰려있는 부산지역 부도율은 전국의 2.4배

  ③ 수출증가율 역시 전국증가율인 18.4%에 훨씬 못미치는 10.2%

 

4.  1978년 12월 총선

 (1) 신민당(야당) : 32.8% 득표

 (2) 통일당(야당) : 7% 득표

 (3) 공화당(여당) :  31.7% 득표, 총선에서 패배 
 (4) 부산과 마산

  ① 지역 의석 수 10석 중 공화당 4석, 신민당 5석을 차지

  ② 공화당 4명도 1위 당선자가 아닌 2위 당첨자

  ③ 서울 부산 등 대도시에서 공화당 열세가 두드러졌다.

5.  신민당 당수인 김영삼을 국회에서 제명 : 들끓는 부산 민심에 기름을 부은 꼴 

 

6. 유신에 항거하지 못하고 침묵을 지켜 ‘유신대학’이라는 오명을 들어온 부산대학교 학생이 항쟁의 기폭제

 (1) 10월 16일, 부산대학교 학생 4천여 명이 “유신철폐”와 “독재타도”를 외치며 거리로 진출

 (2) 동아대학교 학생들이 합류 → 시위대 규모는 점점 증대 → 저녁이 되자 노동자들이 합류해 시위대는 5만~7만여 명 → 상인, 접객업소 종업원, 재수생, 교복 입은 고등학생까지 가세

 (3) 도시 하층민들이 대거 참가하면서 점점 격렬 : 경찰서, 어용 언론사, 도청 등이 불에 타거나 파손

6. 위수령이 발동되고 투입된 공수특전단들의 야만적인 진압 : 1980년 광주에서 더 극적으로 표출
 (1) 공수부대 투입

 (2) 시위는 마산으로 확산 : '유신대학'이던 경남대학교 학생 1000여명이 거리로
  ① 마산에서 항쟁은 더 격렬

  ② 도시하층민이 항쟁의 주력

  ③10월 20일, 정부 : 수출자유지역 노동자들로 확산하려 하자 마산 창원으로 위수령 발동 
 (3) 진압부대로 투입된 공수부대와 해병대 : 대검을 꽂은 채 잔인한 진압 작전 실행 

 

7. 10.26, 박정희 죽음

 (1) 박정희 : "부산같은 사태가 생기면 이제는 내가 직접 발포명령을 내리겠다"
 (2) 차지철(경호실장) : "캄보디아에서는 3백만 명을 죽이고도 까딱없었는데 우리도 데모대원 1, 2백만 명 정도 죽인다고 까딱 있겠습니까"
 (3) 부마항쟁은 김재규의 손을 빌어 박정희 유신체제를 끝장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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