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태조때 어떤 옹주가 전국을 여행하다가 이곳의 경치가 수려함을 보고 ‘귀비사’라는 절을 세웠다. 이 곳은 여승만 수도하던 곳이고 산이름도 정상에 여승의 수도장이 있다하여 ‘대니산’이라 했다.


귀비사는 동북쪽으로 뻗은 능선으로만 바깥 세상으로 나갈 수 있었으며 이 오솔길을 따라 내려오면 현풍으로 건너갈 수 있는 돌을 쌓아 그 위에 통나무를 걸친 다리가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다리를 여승이 다니는 다리라 하여 ‘중다리’라 했다.(현재는 없음)


이 절은 120년간 이어오다가 빈대가 너무 많아 절을 불태웠다. 사람들은 이 절에 빈대가 많았던 것은 이 절을 세운 옹주가 부정한 일을 해서 왕건의 분노를 산 나머지 궁중에서 쫓겨난 뒤 이 절을 세웠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절에 살던 비구니들은 떠나면서 옹주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매년 제사를 지내달라고 원당 마을 사람에게 당부하면서 논 10여 마지기를 사 주었다.


그래서 마을에서는 음력 정월 대보름 전날 저녁에 제사를 지내고 보름에는 음복을 하며 하루를 즐겼다. 세월이 흐르고 흉년이 계속되어도 이 제사만은 지내왔지만 마을이 가난해지면서 그 규모가 작아졌고 결국 얼마전부터 아예 없어지고 말았다.(현풍면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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