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개봉된 '포화속으로'(최승현<빅뱅의 탑>, 권상우, 김승우 주연)의 모티브가 되는 '포항여중 전투'...이 전장의 한 일원인 학도의용군 이우근(17세, 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 학생의 편지...그는 이 편지를 어머님께 전하지 못하고 품에 안은채 여기서 산화한다. (625전쟁 원인에 대해선 여기 클릭)

 

“어머님!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명은 될 것입니다. 저는 2명의특공대원과 함께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수류탄의 폭음은  저의 고막을 찢어 놓았습니다. 지금 이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제 귓속은 무서운 굉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머님. 괴뢰군의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너무나 가혹한 죽음이었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이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님!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니께 알려드려야 내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내 옆에서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볕 아래 엎디어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엎디어 이 글을 씁니다.

괴뢰군은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언제 다시 덤벼들지 모릅니다. 저희들 앞에 도사리고 있는 괴뢰군 수는 너무나 많습니다. 저희들은 겨우 71명뿐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어머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까 조금은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습니다.

어머님!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이!”하고 부르며 어머니 품에 덜썩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제 손으로 빨아 입었습니다. 비눗내 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한 가지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어머님이 빨아 주시던 백옥 같은 내복과 내가 빨아 입은 그다지 청결하지 못한 내복의 의미를 말입니다.

그런데 어머님, 저는 그 내복을 갈아입으면서 왜 수의(壽衣)를 문득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죽은 자에게 갈아입히는 수의 말입니다. 어머님! 제가 어쩌면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저희들을  살려두고 그냥 물러날 것 같진 않으니까 말입니다. 어머님, 죽음이 무서운 것은 결코 아닙니다. 어머니랑 형제들도 다시 한 번 못 만나고 죽을 생각을 하니 죽음이 약간 두렵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 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돌아 가겠습니다. 왜 제가 죽습니까.

제가 아니고 제 좌우에 엎디어 있는 학우가 제 대신 죽고 저만 살아가겠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천주님은 저희 어린 학도들을 불쌍히 여기실 것입니다. 어머님, 이제 겨우 마음이 안정되는군요. 어머님,저는 꼭 살아서 어머니 곁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웬일인지 문득 상추쌈을 게걸스럽게 먹고 싶습니다. 그리고 옹달샘의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어머님! 놈들이 다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뿔사, 안녕이 아닙니다. 다시 쓸테니까요. 그럼, 이따가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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