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1919년 3·1운동 당시 대구제일교회 목사로 이를 주도

② 1921년 출옥, 대구제일교회에서 본격적인 목회활동

③ ‘노회파’와 ‘자치파’의 대립

 ⓐ <동아일보> : 선교사가 조선인의 정신적 발전에 오히려 방해가 되며 모든 교회 분열의 원인이 되고 있음을 지적, ‘양취(洋臭)를 제거하고 조선적 기독교를 조직하였다’

 ⓑ 1931년, 노회측이 교회당 차지

 ⓒ 이만집의 ‘자치파’는 봉산교회 설립 : 시무

④ 금강산에 수양관을 세우고 기도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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