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차문화가 유입된 것은 사료 기록으로 보자면 7세기 무렵이다.
(1) 《삼국사기》 흥덕왕 3년(828)에 당(唐)에 사신으로 갔던 대렴(大廉)이 귀국길에 차 종자를 가져왔는데, 이를 왕명으로 지리산에 심었다.
(2) 차가 이미 선덕여왕(재위 632~646) 때부터 있었으나 이때 이르러 성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3) 7세기 선덕여왕 재위 시에 이미 차가 유입되어 있었고, 9세기에 이르러서는 왕명으로 차밭을 만들 정도로 차에 대한 인식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2. 차문화의 융성기 : 고려시대(918~1392)
3. 조선시대 차문화가 퇴조한 원인
(1) 배불숭유(排佛崇儒) 정책
① 차문화는 곧 불교를 중심으로 꽃피운 문화 : 불교와 차문화는 운명공동체
② 국가주도하에 의도적으로 불교 색채를 배제시키는 상황에서 차 역시 쇠퇴의 길로
※ 제사때 '차'대신에 '술' 이용
(2) 과도한 차 세금과 차 공납
① 고려 말 차 고급화와 사치풍조 폐단 은 그대로 조선으로 이어졌고 백성들은 더욱 세금 압박을 받게 되었다.
② 차밭이 없는데도 기록에 의해 차세가 부과
※ 차를 수확하는 시기와 모내기하는 시기가 거의 일치하여 차 수확에 동원되면 제때 모내기를 할 수 없어 농민들이 차나무를 죽이기도 했음
(3) 임진왜란 이후 정치 경제적으로 피폐한 상황 : 백성은 더욱 궁핍하게 되었고 당연히 차를 마실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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