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곡리(基谷里) : 터실은 마을의 터가 좋다고 붙여진 이름인데 한자로 기곡(基谷)

· 대평리(大枰里) : 하빈천 동쪽 ‘넓은 들판’에 자리잡은 마을이라 불려진 이름

· 동곡리(桐谷里) : 오동나무가 많아 머구실, 오동골, 동곡(桐谷)

· 묘리(竗里) : 동쪽으로 난 좁은 통로를 제외하고는 마을 전체를 나지막한 야산이 둘러싸고 있는 동네인데 이 지세가 묘하게 생겼다고 하여 묘골, 묘곡(竗谷)

· 무등리(武等里) : 옛날에 힘이 세고 무예가 출중한 무인들이 모여 살았는데 무등(武等)이라는 마을 이름은 여기서 유래했고 또한 마을 모양이 낫(鎌)처럼 생겼다고 낫골, 겸동(鎌桐) → 1914년, 무등 + 겸동 = 무등리

· 봉촌리(鳳村里) : 옛날에 낙동강이 퇴적시킨 넓은 모래시장이 펼쳐진 곳이어서 사야촌(砂野村)이라 불렀는데 음운 변화가 일어나 새촌 → 이 곳이 넓은 들판이 되면서 먹이를 찾아 새가 많이 날아들자 새촌(砂野村)을 새촌(鳥村) → 아화(雅化)하면서 봉촌(鳳村)

· 하산리(霞山里) : ‘하목정’은 마을 앞으로 넓은 들이 펼쳐져 있어 ‘들마’였는데 의병장 낙포 이종문(1566~1638)이 1604년(선조 34)에 이곳에 하목정(霞鶩亭) 정자를 세워 하목정 그리고 ‘적산’은 남제(南齊) 양득효(楊得孝)라는 선비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마을 뒷산에 수목이 없이 붉다고 적산(赤山) 또한 ‘성곡’은 마을 서쪽의 구봉산(九峰山) 산마루에 신라가 가야를 막기 위해 쌓은 산성이 있어 이 산 동쪽 기슭에 자리잡은 이 마을을 성곡(城谷) → 1914년, 하목정의 하(霞) 적산의 산(山), 하산동

· 현내리(縣內里) : ‘현내’(縣內)는 신라시대 이후 있었던 하빈현의 관아가 있던곳이라 붙여진 이름이고 ‘중방’(中坊)은 현(縣)의 중심 마을이라는 뜻 → 1914년, 현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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