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리(大里) : 1467년, ‘이시애의 난’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워 원종공신(原從功臣)이 된 곽안방(郭安邦)이 이 마을에 정착하여 후손들에게 예절바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마을 이름을 솔례(率禮)로 정하였다. 솔례 마을은 인근에서 가장 큰 마을이라 대동(大洞)이라 부르기도 했다. → 1914년

· 부리(釜里) : 마을 북쪽에 있는 봉산(쌍산)에서는 작은 산줄기 셋이 남쪽 기슭으로 뻗어 나오고 있는데 그 형세가 마치 가마솥의 삼발처럼 생겼다고 하여 ‘가말’, 부동(釜洞) → 1914년

· 상리(上里) : ‘교동’(敎洞)은 현풍 향교가 있는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고 현풍현 관아가 있었던 ‘웃마’는 읍내에서 위쪽 마을이라 웃마, 상동(上洞) → 1914년

· 성하리(城下里) : 통일신라때 지방군이었던 10정(停) 중 ‘삼랑화정’이 주둔하였던 곳으로 산성이 남아있는데 산성 동쪽밑에 자리잡은 마을이라 붙인 지명 → 1914년

· 신기리(新基里) : 솔례 마을이 커지고 수리내(차천, 車川)에도 제방을 쌓아 수해 위험성이 줄어들면서 사람이 모여들어 마을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는데 새로 터를 잡아 형성한 마을이라는 뜻에서 새터, 신기(新基)

· 오산리(午山里) : 마을 뒷산의 지세가 말을 닮아 말뫼, 오산(午山)이라 불렀는데 그 아랫마을이므로 여기에서 유래

· 원교리(院橋里) : 고려시대이후 이 마을에는 대구에서 경상남도 서부지방으로 가는 큰길이 지나고 있어 이 곳에는 관리들이 공무로 여행을 할때 숙식을 제공하는 풍제원(豊濟院)이 있었고 마을 북쪽을 흐르는 구천(龜川)이 통행에 불편하자 현풍현 현감 주도로 다리를 놓았는데 이 다리를 원다리, 원교(院橋)라 했고 여기에서 마을 이름이 나옴

· 자모리(自慕里) : 창녕조씨(昌寧曺氏)가 처음 정착했을때 낙동강변에 온통 흰 갈대밭으로 펼쳐져 있어 모로(毛老)라 했고 느티골은 마을 앞에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어 붙여진 이름 → 1914년, 모로 +느티골 = 자모동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음)

· 중리(中里) : 마을 북쪽에는 구천(龜川)을 경계로 상리에 접하고 마을 서쪽에는 하리가있는데 냇가에 자리잡은 마을이라 처음에는 거랑가, 천변(川邊>이라 했고 상리 사람은 남쪽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남땀’ → 1914년, 상동과 하동 가운데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중동

· 지리(池里) : 마을 앞에 못이 있어서 유래한 못골 → 1914년, 인근 마을을 통합하면서 지동(池洞)

· 하리(下里) : 상리와 중리의 아래쪽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라 하동(下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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