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 독도 영유권 주장의 근거 : 1905년 일본의 량코도 영토편입 결정 

 (1)  "이 무인도는 타국이 점령했다고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

 (2) "1903년 이래 나카이 요사부로가 어사(漁舍)를 만들어 어로 활동을 한바 국제법상 점령 사실이 있다." 
  ① 독도의 강치(바다사자) 어업을 독점하던 나카이 요사부로(中井養三郞)라는 일본인이 '량코도 편입 청원'을 일본 정부에 제출
  ② 일본 : 독도를 17세기 이후 송도 → 1849년,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호가 이 섬을 발견, 'Liancourt Rocks(리앙쿠르 락)'이라고 부른 이후 이 섬을 량코도 
  ③ 1905년 1월, 일본 각의 : 이 섬을 죽도(竹島·다케시마)라 하고 영토편입을 선언 
 (3) 이 영토선언을 이웃 나라 조선에 정식 통보도 하지 않았다

  ① 조선은 다음해 1906년 3월에 알게되었다.
  ② 일본 조사단 : 독도(일본 명칭으로는 죽도)를 시찰한 뒤 울릉도를 방문

   - 울도군수 심흥택을 만나 독도(일본 명칭으로는 죽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한 사실을 통보

  - 심흥택 : 강원도 관찰사 이명래에게 보고했고, 이 보고는 중앙정부에 전달 

2. 심흥택  보고서 : 1906년 독도가 누구 소유인지를 잘 보여주는 문서
 (1) "본군(本郡)소속 독도가 먼바다 백 리 밖에 있는데, 일본 관리가 와서 일본 영지(領地)로 삼았다고 한다"
 (2) 조정 반응 : 놀라움을 표시하면서 "보고는 읽어봤고, 독도 영지설은 전속이 근거가 없으니 섬의 형편과 일본인이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다시 보고하라"(獨島領地之說 全屬無根)
  ① 이영훈 : "중앙정부는 그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② 일본 학자 :"심흥택의 추가 보고서가 남아 있지 않고, 일본의 영토편입에 조선이 정식으로 항의조차 하지 않았다."

  ③ 조선 정부도 "독도 영지설에 대한 전속무근"이라고 천명 → 항의 문서 작성 → 외교권이 박탈된 상태라 발송하지 못한 것 (현재 규장각에 보관)

  ④ '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 등 주요 신문 : 대한제국의 항의 사실을 보도

 

1946년 1월 29일 자 연합국 최고사령부 지령 제677호. 독도를 ‘TAKE’로 표시하고 한국 관할로 표시


※ 1946년 1월 29일 자 연합국 최고사령부 지령 제 677 호 : '울릉도, Liancourt Rocks(독도), 제주도'를 분명히 적시해 일본 영토에서 제외 → 1946년 6월 22일 자 연합국 최고 사령부 지령 제 1033 호 : 일본 선박의 독도 12해리 이내 접근을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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