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영훈 : "조선은 독도를 알지 못했다"

 (1) 삼국사기와 세종실록지리지에 나오는 '우산(于山)'을 독도라고 단정
 (2)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왕 13년 : "우산국(于山國)이 (신라에) 귀의하였다. 매년 토산물을 공납하였다. 우산국은 명주(溟州)의 동쪽 바다에 있는 섬이다. 혹은 울릉도라고 한다. 땅의 크기는 백리이다. 험준한 것을 믿고 신라에 불복하였다. 이찬 이사부장군이 정벌하였다."

  ① 신용하(전 서울대 교수)는 512년에 우산국이 신라에 복속된 때부터 독도가 한국의 고유영토로 되었다고 해석했고, 많은 학자들이 이 학설을 받아들이고 있다.
  ② 이영훈 : 이 기사에 나오는 우산이 오늘날의 독도를 가리킨다는 것은 솔직히 심한 비약이고 여기서 우산이란 울릉에서 성립한 나라(國)의 이름일 뿐.
 (3) 세종실록지리지 강원도 삼척도호부 울진현 : "우산과 무릉(武陵) 두 섬은 현의 동쪽 바다 가운데에 있다. 두 섬은 서로 떨어짐이 멀지 않다. 날씨가 좋으면 바라볼 수 있다. 신라때는 우산국이라 칭했는데 울릉도라고도 하였다" - 이영훈 : "고려사에 의하면 우산은 원래 11세 초까지 존속하고 사라진 나라(國) 이름인데, 언제부터인가 그것을 섬으로 간주하는 오해가 생겼다. 즉 (많은 국내 학자들이 독도로 생각하는 역사 기록상의) 우산도는 실재하지 않는 환상의 섬이다."

 

2.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있는 '팔도총도' : 독도 고유 영토설의 유력한 근거

 

 (1) 우산도

  ① 울릉도의 절반 크기

  ② 울릉도 서쪽에 위치 : 17세기까지 조선지도에는 17세기까지 우산도가 대부분 울릉도의 서쪽에 그려져 있다

 (2) 이영훈

  ① 이러한 지도를 근거로 독도 고유영토설을 주장하는 것은 "우리 학생들에게 동서남북을 혼동하도록 가르치는 폭거"

  ② 이케우치 사토시 연구 : 조선시대 그려진 116장의 지도에 그려진 우산도의 위치가 17세기까지 대개 울릉도 서쪽 → 18세기, 남쪽으로 이동 → 19세기, 동쪽, 북동쪽으로
  ③ "우산도 자체가 환상의 섬이었기 때문" : 조선은 독도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고 조선 지도에 나오는 우산도는 당연히 독도는 아니다.

3. 19세기 후반에도 조선은 독도를 몰랐다(?) 
 (1) 이영훈 : 1882년 고종의 명으로 울릉도를 탐사한 이규원 검찰사에 대한 기록

  ① 고종의 명 : "울릉도 근방에 송도, 죽도, 우산도가 있다는데, 거리가 얼마인지를 조사하고 송도, 죽도, 우산도를 합쳐 울릉도라고도 하니 자세히 살피라" 
  ② 이규원, "우산도를 찾지 못했다"고 보고

 

이규원이 그린 울릉도 지도

  ③ '죽도'라는 섬은 있어도 '우산도'는 없다 : 조선은 울릉도 동남 87km 떨어진 바위섬을 알지 못했거나, 그것을 울릉도의 부속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2) 일본 사서 기록
  ① 울릉도를 죽도(竹島·다케시마), 독도는 송도(松島·마츠시마)

  ② 울릉도 왕래가 한 참 이뤄지던 1660년 사서에 독도를 송도라고 기록 
 (3) 17~18세기에 양국이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도서로 인식해서 조선 땅으로 간주했다는 근거
  ① 17세기, 일본 : 독도(그들은 송도라고 부름)가 울릉(그들은 죽도라고 부름)과 한 패키지임을 인식
  ② 1660년, 일본 고문서의 '竹島之內松島'(죽도지내송도)라는 표현 : 송도(독도)와 죽도(울릉도)가 하나의 묶음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③ 조선 : 기본적으로 공도(空島)정책, 해금(海禁)정책 - 섬에 사람이 살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독도에 대한 이해가 충분치 못했고 지도에서 우산도 위치가 제각각

4. 안용복 사건  : 울릉도에 대한 일본인 침입을 항의하러 1696년 2차 일본행을 감행하여 오늘날의 독도를 일본이 송도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그것은 조선의 영토고, 이름은 우산도"라고 강하게 이의를 제기면서 강원도 지도를 제시.
 (1) 이영훈

  ① 조선 왕조가 구체적인 지시를 했다는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

  ② "조선정부는 안용복의 그런 주장에 하등의 관심을 표하지 않았다. 관심을 표하고, 관리를 파견해 섬을 탐사하지도 않았니다. 조선왕조는 울릉도에만 관심이 있었지 우산도에는 하등의 관심을 표하지 않았다" 
 (2) 울릉도 문제로 일본과 분쟁이 생기자 조선은 울릉도 관할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1694년 9월, 수토사(삼척첨사 장한상) 파견

  ① 울릉도 성인봉에 올라 동쪽으로 지금의 독도를 보고 기록

  ② 조선이 울릉도를 비롯한 동해의 자국 소속 도서를 통할하고자 하는 분명한 의지를 갖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 것
 

5. 1808년, 만기요람(萬機要覽)

 (1) 與地志(여지지)를 인용

 (2) 울릉도와 독도를 정확히 기록 : "울릉과 우산은 모두 우산국의 땅이다. 우산은 왜(倭)가 말하는 송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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