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때 조선에 원군으로 왔던 명나라 장군 이여송 참모중에 두사충(杜師忠)은 전쟁이 끝난 후에 조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대구 앞산밑에 살았는데 명나라를 생각한다 하여 동네 이름을 대명동(大明洞)이라고 했다. 두사충은 젊었을 때 자신의 묘터를 미리 잡아두었는데 그 뒤 묘터를 아들에게 알려주려고 가마를 타고 찾으러 나섰지만 너무 쇠약해 지금의 담티고개 부근에서 담(痰)이 끓어 숨을 거두었다. 그래서 지금도 이 고개를 담티고개라 부른다고 전해지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그 후 두사충 후손들은 묘소 앞에 모명제(慕明齊)를 지어 그를 기리고 있다.(만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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