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1592년 4월 13일,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휘하의 우선봉장으로 군사 3000여 명을 이끌고 부산에 상륙
② 조선의 풍속을 보고는 백성에게 안심하라는 효유서(曉諭書)를 편 뒤 4월 20일 경상좌병마 절도사 박진(朴晉)에게 귀순 요청
③ 경주, 울산, 의령 전투에 참가 : 종2품 가선대부(嘉善大夫)
④ ‘김충선’ 성명 하사 : 정2품 자헌대부(資憲大夫)
⑤ 1600년(선조 33), 진주목사 장춘점(張春點) 딸과 혼인
⑥ 1624년, 이괄의 난 진압에 큰 공
⑦ 1636년, 병자호란에 큰 전과
⑧ 『모하당집』3권 저술
⑨ 가창군 우록리 녹동서원(鹿洞書院)에서 제향
⑩ 일본의 평가 : ‘천하의 매국노’ → ‘일본의 양심’, ‘인류애의 수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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