⑴ 정신대(‘군’ 위안부) 문제 규명과 배상에 대한 요구에 일본은 방관하는 태도로 일관

⑵ “배상문제는 마무리되었다”

 ① 1952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 한국인이 일본 국적을 이탈

 ② 1965년 김종필-오히라(大平)간의 한일청구권협정

⑶ 1992년 1월, 육군이 위안소의 감독과 통제에 관여했다는 육지밀대 일지가 발견되기 전

 ① 일본 정부와 군의 개입 사실을 거부

 ② ‘민간 상인의 상행위이다’

⑷ 1992년 2월, 당시 행위가 일본 국왕이 재가해 공포한 ‘여자정신대근무령’에 근거한 것임을 입증하는 관계법령과 문서가 발견 : 일본 정부수뇌부가 정신대 강제모집과 총원 및 관리에 깊숙이 개입했음이 명백히 밝혀짐

⑸ 국내 관심

 ① 1988년,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정신대 연구팀이 후쿠오카(福岡)에서 오키나와(沖縄)까지의 답사를 시작하면서 표면화

 ② 1990년,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발족 :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규명하기 시작

  ⓐ 정신대 사실 인정과 사죄

  ⓑ 피해유족과 생존자에 대한 배상 

  ⓒ 교과서와 역사교육서 등에 정신대 사실 명기 등을 요구

  ⓓ 위령비 건립을 일본과 한국 정부에 요청

⑹ 일본 : 정신대에 관한 정부와 군의 개입사실 부정과 책임회피성 발언으로 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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