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7월왕정(1830-1848).
⑴ 성립: Orlean가(家)가 공화주의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Orlean공(公) Louis Philippe을 왕으로 추대 → 즉위.
⑵ 성격.
① 지주귀족의 부르봉 왕정을 붕괴: 금융귀족의 부르조아적 과두지배체제를 성립.
② 프랑스를 지배한 것은 프랑스의 시민층이 아니고 다만 그 한 분파: 금융 봉건체제.
Ⓐ 부르주아 계층의 극소수 상층에 속하는 은행자본가와 상공업자의 지배체제.
Ⓑ 산업시민층.
a. 소수파.
b. 야당에 불과.
Ⓒ 소시민, 농민, 노동자: 정치적인 모든 권력에서 배제.
⑶ 정부의 주요시책.
① 발행 국채의 인수와 매매를 금융가들이 하였기 때문에 금융가에게 유리한 정책이 됨.
② 증권시장이 번영.
③ 대규모 토목사업과 철도건설.
④ 자유방임주의 경제.
⑤ 대외정책, 특히 동방정책에 소극적.
⑥ 노동자에 대한 강경한 탄압정책: 연이은 파업폭동을 강경진압.
⑷ 산업혁명.
① 1800년경 나폴레옹시대부터 시작.
② 7월왕정 시기에 본격화.
③ 2제정(1852-1870)시기에 완성: 영국보다 40년 뒤짐.
④ 산업 자본가세력이 약하였다.
⑤ 외국자본, 특히 영국자본의 의존도가 높았다.
⑥ 노동문제와 사회주의가 대두: 산업화에 의한 필연적인 대두.
2. 2월혁명(1848).
⑴ 의의.
① 7월왕정을 붕괴시키고 2공화정을 수립시킨 정치혁명.
② 처음으로 사회주의 세력이 혁명의 주도세력중에 일부가 된 혁명.
③ 7월혁명보다 훨씬 민주적인 개혁을 일시적이나마 성취했던 혁명.
④ 프랑스 국내뿐만 아니라 전유럽에 큰 영향.
Ⓐ 자유주의적 사조가 유럽을 지배하기 시작한 계기를 제공.
Ⓑ 1848년: Turning Point.
⑵ 배경.
① 산업자본가와 노동자계급이 성장.
② 사회주의 사상(무정부주의, 공상적 사회주의)이 정치 세력화.
③ 왕정 초기부터 정적(政敵)이 많았다.
Ⓐ 구(舊)왕당파: 부르봉왕조 복구를 시도.
Ⓑ 공화주의자: 혁명의 댓가를 충분히 받지 못해 불만.
④ 의회분열.
Ⓐ 시민귀족의 우파.
a. 대표자: F. P. G. Guizot.
b. 여당.
Ⓑ 좌파: L. A. Thiers가 대표.
Ⓒ 좌익 왕파
a. 대표자: Baro.
b. 온건야당.
⑤ 많은 법률이 시민층의 발전에 좋은 영향을 주었으나 노동자에게는 최악.
⑥ 외교문제의 실정, 특히 1835년의 알제리아 문제.
⑦ 1839년, 총선거 패배.
Ⓐ Thiers 수상 사임.
Ⓑ Guizot: 수상에 임명.
⑧ 1845-1846년 흉작: 기아로 인한 소요.
⑨ 1847-1848년, 공황.
Ⓐ 대중의 궁핍.
Ⓑ 공업 시민층에게 큰 타격.
⑩ Guizot: “모든 개혁에 반대한다.”
⑶ 경과 및 결과.
① Alponse de Lamartine의 임시정부 수립: 노동자 대표로 사회주의자도 참석 .
Ⓐ 노동권 보장.
Ⓑ 노동자 결사의 자유를 인정.
Ⓒ 국립작업장 설치: 실업자 구제책.
② 제헌의회 선거.
Ⓐ 온건한 공화파가 다수점유.
Ⓑ 급진적인 개혁에 대한 시민과 농민의 두려움으로 인한 결과.
③ 2공화정.
Ⓐ 국립작업장 폐쇄.
Ⓑ 6월봉기 진압.
Ⓒ 공화제 민주헌법으로 대통령을 선거.
④ Louis Napoleon 당선.
Ⓐ 프랑스 인구의 대다수인 농민의 지지.
a. 혁명시대의 토지개혁으로 소토지 소유자가 된 그들은 이에 위협을 주는 사회주의에 대해 본능적으로 혐오와 공포를 가짐.
b. 나폴레옹 시대를 동경.
Ⓑ 소시민, 시민층: 사회주의를 억압하는 나폴레옹적인 과단성을 기대.
⑷ 성격.
① 빈체제를 붕괴시킴으로써 자유주의의 결정적인 승리를 초래.
② 노동자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을 강화시킨 혁명.
③ 사회주의 세력 성장에 대한 반작용은 민주주의의 후퇴를 초래.
⑸ 국제적인 영향.
① 직·간접으로 영향을 받지 않은 나라는 러시아와 터어키뿐이다.
② 영국: Chartist 운동 - 자유주의 운동.
③ 아일랜드의 무장봉기: 영국에 대한 독립 - 민족주의, 국민주의 운동.
④ 독일의 3월혁명: 각 연방대표가 자유주의적 통일을 구상 - 보수적인 헌법을 제정.
⑤ 오스트리아 3월혁명: 메테르니히 몰락.
⑥ Italy, 폴란드, 헝가리 독립운동.
⑦ 자유주의, 민주주의운동은 1년 후에 반동세력의 반동(反動)을 받아 거의 소산(燒散).
Ⓐ 혁명 지도자의 경험과 총명의 결여.
Ⓑ 혁명진영 내부의 분파와 혁명목표에 대한 의견대립.
Ⓒ 1848년 중반-1850년 호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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