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군정의 정책
 ① 미국은 공산주의세력 확대를 막고 자본주의체제를 자국중심으로 재편하는 외교정책을 폈는데 이러한 정책은 남한에도 그대로 적용
  * 총독부 건물이 군정청으로 바뀌고 일장기를 내리는 대신 성조기가 게양
 ② 군정실시 선포(1945. 9. 8)
  ㄱ. 아놀드 군정장관은 조선인민공화국을 부정하고 미군정이 38선 이남의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선포
  ㄴ. 남한의 행정기능을 마련하기 위해 친일관료들을 임용, 친일경찰을 군정경찰로 충원, 친미적이거나 보수적인 인물들을 행정고문이나 군정관리로 채용
  ㄷ. 국공유재산과 일본인재산을 접수하고 일본인재산을 군정청소유로 접수시켜 관리
  ㄹ. 소작료 : 총수확물의 1/3을 넘을 수 없도록 법령을 정함,
  ㅁ. 신한공사 설치 : 이전에 동양척식주식회사에 소속된 토지를 관리
  ㅂ. 토지분배 방식 : 유상몰수 유상분배방식, 농민과 지주 모두에게 큰 지지를 못 받음
  ㅅ. 일본인 재산 불하정책 : 일제시기의 기업가나 귀속기업체의 관리인들에게 넘어감
 ③ 미군정 정책은 우리 민족의 이해관계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자본주의체제의 육성만을 염두에 두고 추진되었으며, 친일파들이 해방 뒤에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터전이 마련

 

2) 각 정치세력의 활동
 ① 해방직후 주춤했던 우익세력이 미군이 들어오면서 활기
 ② 한국민주당 결성(1945. 9. 16) : 건준 및 좌익세력에 반대하여 ‘임정봉대론’을 내세우며 송진우, 김성수 등이 중심 ⇒ 우익 보수세력 중심
 ③ 독립촉성중앙협의회 결성(1945. 10. 16) : 이승만이 자기 중심의 좌우익 정치세력 결성 ⇒ 친일 보수세력들이 따름
 ④ 한국독립당 : 김구 등 임정세력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주장하며 해방정국을 주도
  * 미군정으로부터 승인받지 못한 임시정부는 뒤늦게 개인 자격으로 귀국
 ⑤ 국민당 결성 : 안재홍 등 좌우합작운동을 주도, 남한 단정에 반대해 단독선거에 불참 ⇒ 양심적인 우익 민족주의세력을 대변
  * 안재홍은 건중의 부회원장까지 지냈으나 인공이 수립되면서 나옴
 ⑥ 조선공산당(1945. 9) : 박헌영의 경성콤그룹과 좌익세력 중심, 완전한 독립과 토지문제 해결 주장,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와 전국농민조합총연맹 조직
 ⑦ 조선인민당 결성 : 건준위원장이었던 여운형 결성
 ⑧ 남조선신민당 결성(1946. 2) : 경제사학자인 백남운이 북한의 신민당을 모체로 결성
  * 여운형과 백남운은 좌익 정치세력 가운데 중도좌파세력

 

3) 소련군의 점령정책과 북조선 분국의 결성
 ① 소련은 한반도를 주요 전략지역으로 만들 생각보다는 자신의 우호적인 친소정권을 세우려는 입장
 ② 북한에도 건국준비위원회가 조직되었고 그 뒤 인민위원회로 개편
  * 조만식이 평남건준위원장을 맡음
 ③ 소련은 북한에서 군정을 실시하면서 행정권을 인민위원회로 넘겨 주면서 민족주의세력이 제거되고 좌익세력이 정치적 주도권을 잡음
  * 조만식이 신탁통치를 반대하여 소군정과 대립하면서 민족주의세력은 약화
 ④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군 결성(1945. 10. 10) : 소군정의 지원을 받는 김일성을 중심으로한 세력이 차츰 주도권을 잡음, 1946년 북조선노동당으로 개편

 

4)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와 토지개혁
 ①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결성(1946. 2)
  ㄱ. 위원장 : 김일성
  ㄴ. 20개조 정강 발표 : 일제잔재의 청산, 중요산업의 국유화, 토지개혁의 실시, 8시간노동제 등
 ② 토지개혁 실시
  ㄱ.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원칙으로 실행하여 봉건적 지주제도가 청산
  ㄴ.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지도부는 농민의 지지를 이끌어내 대중적 권력기반 강화
  ㄷ. 토지개혁에 반발한 지주와 농민은 남쪽으로 내려옴
 ③ 북한은 토지개혁, 주요산업 국유화 등을 실시하여 사회주의체제로의 이행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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