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주장 : 고구려는 중국과 조공·책봉 관계를 맺은 지방정권이다.


중국학자들은 고구려가 중국에 조공(朝貢)을 바치고 책봉(冊封)을 받았으므로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조공·책봉은 전(前)근대시기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중국과 맺었던 외교관계의 형식이자 국제무역의 한 형태일 뿐 명분과 실제가 서로 달랐다.


주변 국가들은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 때문에 적극적으로 중국과 조공·책봉 관계를 맺었다. 중국학자들도 이러한 점을 알고 중국과 다른 나라의 관계를 볼 때 명분상·자구(字句)상의 조공·책봉 관계와 실제 상황을 구분해서 파악한다. 그런데 유독 고구려에 대해서만 실상(實狀)을 왜곡하고 있다.


조공·책봉이 정착되는 남북조 시기에 고구려는 오히려 독자적으로 남조·북조와 대등한 관계를 유지했다. 고구려는 두 왕조와 모두 조공·책봉 관계를 맺고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두 왕조와의 관계를 자율적으로 조정했다. 그러나 어느 왕조도 고구려에 제재를 가하거나 정치적으로 간섭할 수 없었다. 이는 조공·책봉이 중국의 지방정권임을 증명하는 근거가 되지 못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만약 조공·책봉 관계만으로 중국의 지방정권이라 간주한다면 신라·백제·일본·베트남을 비롯한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도 모두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는 것이 된다.


* 고구려사에 나타난 조공·책봉


⑴ 평양 천도(遷都) 이전까지 고구려와 중국 사이에는 평화 기간 보다는 전쟁기간이 더 길었다. 이는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 아닌 독립국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⑵ 평양 천도이후 남조와 북조가 동시에 고구려왕을 책봉하였으나 실질적인 신속(臣屬)관계가 존재하지 않았고 형식적인 의례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⑶ 중국은 수·당 통일기를 제외하고는 계속 분열되어 있어 주변 국가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고 조공·책봉은 구속력을 갖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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