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역사학 및 사회학자로서 한국 체육계의 대표적인 지도자로 활동
② 1934년 5월, 진단학회(震檀學會) 창립 당시 발기인
③ 1944년, 조선건국동맹(朝鮮建國同盟) 가담
④ 1947년, 여운형 암살 : 현실정치와는 관계를 완전히 단절
⑤ 『한국사』 집필에 참여
⑥ 일제때 체육인으로서 활동상
ⓐ 1930년, 일본 농구협회 창설을 주도
ⓑ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에서 농구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는 데 큰 역할
ⓒ 한국인의 올림픽 참가를 적극적으로 후원 : 농구의 이성구 3명, 축구의 김용식, 마라톤의 손기정과 남승룡
ⓓ 제12회(1940) 올림픽을 도쿄(東京)에 유치 : 2차대전으로 무산
⑦ 광복후 체육인으로서 활동상
ⓐ 1946년, 조선체육동지회 결성
ⓑ 1947년 6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회원국으로 가입
ⓒ 1951년, 대한체육회 부회장
ⓓ 1964년~1966년, KOC(대한올림픽위원회) 10대 위원장
ⓔ 이기붕(李起鵬, 1896~1960)에 이어 두 번째 IOC 위원으로 선출
⑧ 그를 기념하기 위해 한·일농구협회에서는 ‘이상백배 한·일 대학 농구대회’를 매년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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