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재만조선인의 항일무장투쟁
① 1937 ~ 1945년에는 중국과 만주를 중심으로 항일 무장투쟁이 활발
② 조선혁명군(양세봉) - 중국의용군과 힘을 합해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
③ 한국독립군(이청천) - 동만주 지역에서 중국군과 연합하여 쌍성보전투, 대전자령전투에서 큰 승리
④ 간도의 조선 농민과 사회주의자들이 결합하여 ‘추수폭등’ ‘춘황투쟁’을 벌임
⑤ 항일유격대는 만주 지역의 유격대를 동북인민혁명군으로 통일하고 8곳에 해방구를 세우고 토지개혁 등 사회개혁 실시
* 동북인민혁명군은 동북항일연군으로 확대 개편
⑥ 조선인 항일유격대 - 보천보전투 승리가 대표적인 것
* 조국광복회 조직 - 동북항일연군 제2군이 국경지대로 옮겨와 반일민족통일전선을 실현하고 독립적인 인민정부를 수립할 목적으로 조직
* 혜산진사건 - 유격대토벌에 힘을 기울여 조국광복회 국내조직원 수백명 검거 사건
2) 조선의용대와 조선의용군
① 1931년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조선인들 사이에는 중국 관내의 모든 항일세력은 통일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
② 한국대일전선통일연맹 결성(1932) : 의열단,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 등의 연합 ⇒ 민족혁명당 결성
③ 조선민족전선연맹 결성(1937) : 민족혁명당, 조선민족해방운동자동맹, 조선혁명자동맹과 연합 ⇒ 조선의용대 창설
* 조선의용대 - 중국 화북지방에서 여러 차례 항일전을 치룸
④ 화북조선청년연합회 결성 : 최창익, 허정숙, 무정 등과 조선의용대가 결성
⑤ 화북조선독립동맹 : 김두봉 등 민족주의자와 화북조선독립동맹과 연합
* 조선의용대는 조선의용군으로 이름 변경하고 일제가 망한 뒤 북한으로 들어가 인민군으로 편입
3) 중경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
① 임시정부는 1932년 운봉길의사의 상해 의거로 새로운 활기를 찾기 시작
② 김구, 조소양 등은 민족혁명당을 탈당하고 한국국민당 조직(1935. 11)
③ 임시정부는 민족혁명당에서 탈당한 조선혁명당과 한국독립당의 일부세력과 연합하여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 결성(1937. 8)
* 중국 관내 항일단체는 조선민족전선연맹(민족혁명당 중심)과 한국광북운동단체연합회(한국국민당 중심)으로 양분
④ 임시정부는 중경에 자리를 잡고(1940), 한국국민당, 조선혁명당, 한국독립당 등 3당은 한국독립당으로 합당(1940)하여 임시정부(김구가 주석) 강화
* 한국독립당 - 일제의 패망에 대비하여 ‘건국강령’ 발표(1941. 11)
⑤ 김원봉의 조선민족전선연맹이 임시정부에 합류로 중국 관내 독립단체의 통일
⑥ 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 창설(1940. 9)
ㄱ. 화북 지방으로 가지 않은 조선의용대 참여와 국민당의 군사원조로 군대 모습 갖춤
ㄴ. 임시정부가 중국국민당정부와 맺은 ‘한국광복군 행동준승 9개항’ 때문에 독자적 군사 행동권을 갖지 못함
ㄷ. 일본에게 선전포고(1941. 12)를 하고 영국군의 요청으로 인도・미얀마전선에 8명의 공작대를 파견하고 미국과 합동작전도 꾀함
⑦ 일제가 패망하면서 임시정부와 한국광복운은 미・소 당사국 두 나라로부터 아무런 인정을 받지 못하고 개인자격으로 조국에 돌아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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