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안용복의 도일(渡日)
(1) 1693년 3월, 1차 도일
① 울산 어부 40여 명과 울릉도에서 고기를 잡다가 일본 어부들과 충돌
② 당당한 대응 : 끌려갔다는 설과 자발적으로 일본으로 갔다는 설이 나뉨
③ "조선 영토인 울릉도에 왜 일본 사람들이 오가느냐"
④ 호키 주 태수 : 안용복 주장을 문서로 작성해 중앙정부 격인 에도 막부에 보냄
⑤ 막부 회신 : 안용복을 돌려보내라고 지시하면서 "울릉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니다"는 내용의 서계(書契) 작성
⑥ 조선은 울릉도와 그 근처 섬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1694년 장한상을 보내 울릉도를 수색
⑦ 조선과 일본 : 일본 대마도와 조선 울릉도 등의 영유권과 어업권을 두고 논의하여 1696년 1월, 일본 막부는 울릉도를 조선 영토로 인정하고 일본 어민의 도해와 어업 활동을 금지하기로 결정
(2) 1696년 5월, 2차 도일
① 울릉도에서 여전히 조업하는 일본인들을 보고 직접 일본으로 가서 울릉도가 우리 영토임을 주장
② 조선 정부 : 그가 귀국 후 허락 없이 일본으로 갔다는 이유로 가혹하게 처벌
2. 조선이 사람이 살지 않던 울릉도 개척을 결정한 것은 1880년대 초
(1) 1883년, 처음으로 조선인들이 울릉도에 (공식적으로) 거주
(2) 울릉도에 불법 체류하던 일본인들때문
3. 일본, 1880년 7월 군함을 보내 울릉도를 조사한 보고서
(1) "이 섬은 17세기 말부터 죽도(울릉도의 일본식 명칭)라 부르던 것으로, 일본 영토에 포함되지 않는다"
(2) 이유 : 어부 안용복의 도일로 일궈낸 일본 막부의 "울릉도 도해 금지 명령' 때문
4. 조선은 "울릉도에만 관심있었다"(?)
(1) 이영훈 : 안용복의 도일을 설명하면서 "조선 정부는 울릉도에만 관심이 있었지, 우산도에는 하등의 관심도 표하지 않았다".
(2) 안용복의 말
① "너희 일본이 말하는 송도(지금의 독도)는 우리의 우산도다"
② 당시 조선 어부들이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도서로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증거
5. 일본, 독도에 관심이 없었다.
(1) 1696년 막부가 울릉도 도해 금지명령
① 일본 사서 : 독도 언급이 거의 사라진다.
② 울릉도 도해가 금지되면서 독도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없어진 것
6. 19세기까지 독도에 대해 양국 모두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나 독도가 조선에 부속된 것이라는 인식을 보여주는 문서
(1) 1870년, 일본 외무성에서 작성된 '죽도, 송도가 조선에 부속하게 된 경위'
(2) 1876년, '竹島外一島(죽도외일도)'를 일본 현의 지적(地籍)에 편제할지에 대한 질의에 내무성 답변
① "두 섬은 일본과 무관하다"
② 竹島(죽도)는 울릉도, 外一島(외일도)는 송도, 즉 독도
(3)1877년, 태정관 지령 : 일본 태정관은 죽도(竹島·울릉도)와 송도(松島·독도)가 일본 영토가 아니라는 사실을 거듭해서 확인했고 이를 훈령 문서로 작성
7. 이영훈, "석도를 남도지방 방언을 이유로 독도라 주장하는 한국학자들은 심한 자가당착"
(1) 대한제국 칙령 제 41 호
①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고 도감을 군수로 개정
② 관할 범위 : "울릉전도(鬱陵全島)와 죽도, 석도(石島)로 한다"
※ 울릉전도 : 울릉도 주변에 있는 관음도 등 주변섬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2) 이영훈 : 칙령 41호에 나오는 '죽도'는 지금의 죽도(울릉도 옆에 있는 섬) 그리고 석도는 지금의 관음도(울릉도 옆에 있는 섬)라고 해석 - 일본 학자 견해와 일치
(3) 남도 지방 방언을 연구한 향토 사가 : 석도가 독도임을 입증할 많은 자료 발굴
① 석도의 석(石)은 돌을 의미
② 남도지방 방언으로는 '돌'을 '독'으로 읽음
③ 전남 고흥 앞바다에는 많은 돌섬들이 있는데, '독섬' '석도' '독도' 등 다양한 명칭의 섬이 존재
④ 전남 고흥군 금산면 오천리 산28번지에는 '독도'라 불리는 바위섬도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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